'2일 후. 뉴욕의 지하철역과 통로에 물이 들어차 통행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1년 후. 무전 송·수신탑의 경고등이 꺼지고 고압전선에 전류가 차단된다.
10년 후. 사람 없는 집은 대부분 50년, 목조가옥이라면 기껏해야 10년을 못 버틴다.
100년 후. 코끼리들은 상아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일이 없어지면서 개체수가 스무 배로 늘어난다.
300년 후. 흙이 차오르면서 넘쳐 흐르던 세계 곳곳의 댐들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500년 후. 온대지역의 교외는 숲이 되어 버린다. 알루미늄으로 된 식기세척기 부속과 스테인리스스틸로 된 조리기구가 풀숲에 반쯤 덮인 채 있다.
1천 년 후. 뉴욕 시에 남아 있던 돌담들은 결국 빙하에 무너지고 만다.
50억 년 이후. 죽어가는 태양이 내행성들을 다 감싸면서 지구는 불타버릴 것이다.'
미국 최고의 과학 저술상 수상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앨런 와이즈먼은 인간이 사라진 이후의 연대기를 이렇게 예견했다. 그가 이번에 펴낸 책 '인간 없는 세상(앨런 와이즈먼 글/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은 '어느날 갑자기 지구상에서 인류가 몽땅 사라진다면….'이라는 가정하에 그려낸 과학 논픽션이다. 과학서라는 말에 내심 어려운 용어가 가득하지 않을까 싶지만 아직 벌어지지 않은 먼 훗날의 일을 치밀하면서도 쉽고 그럴듯하게 다룬 저자의 솜씨가 대단하다. 중학생 정도면 흥미진진하게 읽을 만하다. 책장을 넘길수록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현대 문명에 대한 회의와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밀려든다.
지구상에서 인류가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간이 사라진 바로 다음날 자연은 집 청소부터 하기 시작한다. '기계를 믿고 더욱 오만해진 인간의 우월성에 대한 자연의 복수'는 물을 타고 온다. 인류가 사라진 이틀 만에 지하철 펌프가 멈추면서 뉴욕의 지하철역과 통로에 물이 들어차 통행이 불가능해진다. 난방이 중단되면서 3년 후에는 건물 배관이 얼어터지고 건물이 손상된다. 몇 번의 추운 겨울을 나는 동안 바퀴벌레들은 모두 멸종할 것이다. 주인을 잃은 집은 10년, 길어야 50년이 지나면 지붕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20년이 지나면 고가도로를 지탱하던 강철기둥들이 물에 부식돼 휘기 시작한다. 아무도 하수구를 치워주지 않아 막혀버리면 도로가 갈라지고 터지면서 새로운 물줄기가 생겨난다. 퇴적현상으로 인해 파나마운하가 막히고 남북 아메리카가 다시 합쳐진다. 인간이 사라진 자리에는 한때 인간에 의해 괴롭힘을 당했던 동물들이 번성하게 된다. 도시가 정글이 되는 데는 단 100년이 걸리지 않는다.
저자는 인간 없는 세상의 모습과 인류와 함께 사라질 것들은 무엇이고 인류가 지구상에 남길 유산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한 지적 탐험에 나섰다. 한국의 비무장지대(DMZ)를 비롯하여 폴란드-벨로루시 국경의 원시림, 체르노빌, 아프리카, 아마존, 북극 등 전 세계의 구석구석을 발로 누비면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취재를 했다. 한국 DMZ를 다녀온 저자의 감상은 이 책의 주제의식을 전달하기에 모자라지 않다. "인간 없는 50년 세월이 빚어낸 기적이다.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화해하게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1. 인류가 사라진 지 100년 후 콘크리트, 금속, 플라스틱으로 이뤄진 현재의 도시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자유롭게 상상해보자.
2. 인류의 손이 닿지 않은 원시림, DMZ, 체르노빌 사고 현장 등에는 누가 살고 있고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3. 인류가 자연과 함께 공존하려면 어떤 노력을 펼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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