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심상찮다. 8월의 계속된 비로 작황이 나빠진 무·배추 등 채소는 물론이고 기름 값 폭등으로 인해 시설채소 값과 밀가루 등 공산품값, 휘발유, 공공요금 등 안 오르는 게 없다. 이 때문에 서민들은 가파른 생활물가의 상승으로 허리가 휜다.
◇무·배추, 대체재로 극복
5일 오후 대구 북구 칠성시장에서 만난 주부 이미연(53) 씨. 김치를 담기위해 채소가게를 여럿 다니면서 가격을 물어보고는 결국 값이 상대적으로 싼 얼갈이배추 네 단을 사고는 시장을 떴다. 재래시장에 나오면 배추값이 싸지 않을까 싶어 벼르고 별러 나왔다는 이 씨는 무와 배추 값이 너무 비싸 얼갈이배추로 대신 김치를 담기로 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이 씨가 이같은 선택을 한 것은 배추 한통 값이면 얼갈이 배추 3단을 살 수 있기 때문. 이날 대구 칠성시장의 채소시세는 상품기준으로 무(1개) 2천500원, 배추(1통) 3천 원, 대파(1단) 2천300원, 부추(1단) 1천500원~2천 원, 얼갈이배추(1단) 1천 원 을 나타냈다.
역시 같은 날 오후 동아백화점 수성점에 들른 범물동의 주부 서미경(44) 씨는 지하 1층 식품관에서 배추 두 포기와 무 두 개를 샀다. "두 달 전만 해도 한 번에 각각 5포기와 5개씩을 사서 김치를 담궈 이웃과 나눠먹었지만 당분간 인심 쓰는 일은 중단키로 했다."고 말했다. 최상급 채소를 갖다놓는 백화점인 만큼 이날 배추(1통) 5천300원, 무(1개) 2천850원, 오이(3개들이) 1천980원, 대파(1단) 2천980원의 시세를 보였다. 지난 8월 같은 크기로 배추 3천580원, 무 1천980원, 오이 1천280원, 대파 1천280원 선에서 큰 폭으로 오른 것.
◇고물가, 생활풍속도 바꿔
물가 인상은 서민들의 식탁도 바꿔놓고 있다. 가정에서 값 비싼 김치류가 줄어들고 다른 반찬으로 식탁의 여백을 채우는 일이 잦아지고 있는 것. 주부들이 시장바구니에서 야채량을 줄이고 있는 것은 채소 값이 전년 같은 기간 보다 배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올 가을에는 김장김치를 하지 않겠다는 주부들도 많다. 값비싼 '금추'로 김치를 담느니보다는 포기김치를 사먹는 게 더 경제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범어동의 정인선(48) 씨는 "배추 값도 비싸지만 양념류 값도 만만찮아서 김장김치를 담지 않고 포기김치를 그때그때 사먹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과일 값도 생산지에서는 작년보다 품질과 수확량이 줄어 농가수입이 줄었다고 야단이지만 도시 소비자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과는 오히려 8월에 비해 값이 비싸졌다. 물론 품종이 다르지만 동아백화점에서는 8월 개당 990원(아오리)이던 것이 현재는 1천290원(부사)의 시세를 보이고 있다.
◇채소시장은 되레 한파
채소 값 상승으로 재래시장과 백화점, 대형마트 등에는 벌써 한파가 닥쳤다. 5일 오후 칠성시장 채소가게에는 여기저기 무와 배추, 대파 등 채소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 가격을 물어보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정작 사가는 사람은 뜸했다. 지난해 대비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다보니 소비자들이 선뜻 구매에 나서지 않고 있는 탓이다.
이처럼 무 배추 대파 등 주요 김장 채소류 값이 크게 오른 가운데 물량 부족난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 유통업계는 8월 이후 가을장마 등으로 일조량이 부족, 생육이 부진한 데다 지난달 태풍 영향으로 수확량이 줄었고 지난해 과잉생산의 후유증으로 인해 재배면적이 줄어든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동아백화점 농산구매팀 김재달 과장은 "현재 무·배추 값이 지난해 대비 평균 배 가량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면서 "본격적인 김장시즌에 접어드는 11월 중순 부터는 배추 최대 생산지인 전남 지역에서 물량이 본격 출하되면 가격이 안정되겠지만 작년보다는 오름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마트 담당 바이어는 "무는 전년보다 20~30%, 배추는 10~15%가량 산지 면적이 줄어든 가운데 11월 시세는 10월보다 다소 내릴 것으로 보이지만 전년에 비해 2배 정도 상승세가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물가, 줄줄이 인상 예고
오른 것은 채소류뿐만 아니다. 올 들어 국제곡물가격이 30%가량 인상되면서 국내 식료품 값 인상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이미 올 상반기에 라면·과자·오렌지주스·발효유 등 가격이 7~10% 오른 데 이어 지난달 22일 기준으로 밀가루(중력1kg)가 940원에서 1천180원으로 인상됐다. 밀가루 공급가격이 오른 후 튀김가루·부침가루 등 밀가루 관련 제품 메이커들이 기존 공급한 제품의 재고가 바닥나는 대로 값을 올리겠다는 사실을 이미 유통점에 통보해둔 상태다. 특히 지난달 밀수입 가격이 최고 15%가량 올라 라면·국수·빵·과자 등의 관련제품 값도 줄줄이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이 10월 물가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 올랐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서민들의 체감물가는 이 보다 훨씬 많이 올랐다. 채소류·휘발유·밀가루 등이 서민생활 물가 인상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올 들어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는 국제 원자재와 유류 가격 상승 추세가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에 그대로 전달될 것으로 보여 물가 불안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황재성기자 jsgold@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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