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치료는 영구적인 흔적을 남긴다. 충치가 있는 경우에 손상부위를 깨끗이 제거하고 다른 적당한 대체 재료로 메워 원래의 외형과 기능을 회복시켜주는 것이 치료의 목표이다. 병이 생기기 전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 즉 재생시키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치아는 구강 안에 나오면 재생의 능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성장기에는 충치가 잘 생기고, 중년 이후에는 치주 병이 주로 발생한다. 치아 주위조직 즉 잇몸이나, 잇몸 뼈들도 상당한 손상을 입게 되면 병이 생기기 전의 정상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아주 어렵고 힘든 작업이다. 대개의 치과 치료라는 것은 상처의 흔적을 남기는 것을 전제로 하고, 또 반복적으로 일어나면 제거해야만 한다. 하지만 기계적인 기능이나 심미적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 정도의 회복을 위해 치과의사들은 열심히 노력하고 대개는 성공적으로 그 임무를 수행한다.
상처의 흔적을 남기는 이런 치료가 잘 유지되고, 효과적인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환자들의 세심한 주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또 주기적인 관찰은 어쩔 수가 없는 운명처럼 필요하다. 많은 치과 가운데 자기만의 단골치과가 생기는 이유가 이 때문일 것이다.
이 가을에 나에게 꼭 필요한 한 권의 책을 선물받았다. 2002년에 발간된 '중년의 리모델링'이란 책으로 중년기의 심리를 공부해 학위를 받으신 임경수 님이 쓴 것이다.
인생을 180° 반원이라 한다면, 전반기의 반은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목표는 성취해야만 한다. 또 출세해야 성공한 인생으로 격려받는 구조에서 살아간다. 가정과 사회 곳곳에는 삶을 병들게 하는 요소들이 숨어있다. 이것들은 개인의 인생살이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적절한 치료의 과정을 통해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지 않게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지만, 이해와 사랑이라는 우호적인 환경을 갖지 못하고, 포기와 배반이라는 비친화적인 환경에서 성장하면 이 상처들은 치유되지 않고, 숨겨져 장애를 남기게 된다.
인간발달의 각 단계는 전 단계에서 받은 정신적인 상처들이 축적돼 왜곡된 삶의 모습으로 표출된다. 이런 이유로 비정상적인 중독이나 폭음과 폭식, 그리고 언어적 폭행과 외도 등이 나타난다. 또 삶을 '질'이 아닌 명예, 부, 지위 등 '양' 위주로 평가하고 사람을 자리매김한다.
인생의 후반부인 중년에는 전반기와는 다른 형태의 삶을 살도록 되어 있다. 성공과 성취가 아닌, 자신의 삶과 일을 통해 획득한 가치와 삶의 방법을 후대에 전하는 생산성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룬 것을 나누어 갖고 이웃에 대한 관심, 돌봄, 배려 등의 이타주의에 의해 살도록 인간은 만들어졌고, 이것은 인간 심연에 뿌리내린 본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체성의 상실로 삶에 대한 갈증이 생기고 불안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나이 오십이면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다.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해준 뜻과 명령을 안다는 의미다. 이제 오십이 넘은 나도 치료되지 않은 어떤 마음의 상처가 남아 있는지 되돌아보고, 책임 있는 삶, 믿을 수 있는 사람, 이웃의 고민을 같이 의논하고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갖게 된다.
최성진(최진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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