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씨의 대선 출마 선언으로 대선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그의 출마변은 '좌파 정권 교체'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이회창씨는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로 발탁돼 일약 정치적 거물이 된 사람이다. 하지만 대통령 YS와 이씨의 동거는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다. 한국식 셈법으로 하자면 YS는 전임 대통령들보다는 덜 보수적이었고, 이씨는 YS보다 또 덜 보수적이었으니 죽이 잘 맞을 수가 없었다.
이씨는 감사원장 시절 북한의 금강산댐에 대응한 5공의 평화의 댐 건설을 정권적 책략이라고 밝힘으로써 결과적으로 평화의 댐을 무력화시켰고, 총리시절엔 새마을 등 관변단체에 대한 지원을 감축하거나 폐지하는데 앞장섰다. 세월이 흘러 이씨가 어느새 강경 보수주의자처럼 앞세워졌다.
이씨는 두 차례 대선 패배로 좌파 정권 10년을 헌상했다. 막강 여당 후보로, 강력한 야당 후보로, 두 차례 모두 아주 좋은 여건에서였다. 지금이 그때보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면 인간적으로 문제가 있다. 그의 출마가 좌파 정권 10년 종식은커녕 15년 이상으로 연장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굳이 외면하고 있다.
1971년 대선은 박정희 대통령과 야당 김대중 후보의 치열한 한판 승부였다. DJ의 인기는 3선 개헌에 대한 반발감과 겹쳐 상당했다. 4대 강국 안보 보장론, 예비군 폐지 등 공약도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고, 전면을 얼굴사진으로 덮은 선거포스터도 다른 후보보다 훨씬 신선하고 강한 인상을 주었다.
DJ는 특히 잘 생긴 얼굴과 탁월한 웅변술로 전국 시군을 모조리 누비다시피 하는 유세 강행군을 벌였다. 밤 12시 통행금지 시간이 다 돼 가는데도 유세장에 모인 청중들은 늦어지는 DJ를 기다렸고 그의 연설에 환호했다.
당시 DJ 연설에 단골 메뉴가 있었다. "메뚜기 이마팍만한 나라에서 경상도와 전라도로 갈라져서 되겠느냐" "이 도시에도 호남 출신이 00% 살고 있는데 여러분들과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느냐"는 강한 반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호남 갈등이 심각하지 않았다. 필자는 DJ의 그 같은 선거 캠페인이 한국 정치 구도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DJ는 그 후 1987년 평화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서 메뚜기 이마팍만한 나라에서 호남의 맹주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1992년 14대 대선에서 다시 낙선하면서 호남 표만으로 대통령 되기 힘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윽고 1997년 15대 대선, 그는 여권이 이회창.이인제로 갈라진 유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연립정부, 내각제를 약속하면서 김종필씨와 DJP연합을 기어코 만들어 냈다. 확실한 승리를 담보하기 위한 치열한 공들임이 그를 4수만에 대통령이 되게 한 것이다.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씨가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뭔가 불만이 있긴 있는데 국민들은 대체로 그 불만을 잘 알지 못했다. 그는 한국미래연합이라는 신당을 만들어 대표에 올랐다. 그 무렵 필자는 한 식당에 들러 옆자리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박정희 시대를 함께 일한 대구의 지방 행정, 교육계 등 은퇴자들이 많이 오는 식당에서 그 분들이 박씨에 대해 끔찍할 정도의 비난을 퍼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의 딸이라는 데 대한 일말의 동정도 없었다. 그분들에게 당시 박씨는 DJ정권 연장을 돕는 배신자일 뿐이었다. 무서운 민심이었다.
여권 후보가 노무현씨로 단일화되자 한나라당은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확신하는 축제분위기였다. 단일화 직후 지역 한나라당 의원들과 언론인이 식사를 함께 했다. 축하와 덕담만 쏟아졌지만 필자는 나름의 셈법으로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점쳤다. 노무현 낙선의 근거를 물었으나 뜬금 없는 말이 될 뿐이었다. 그들에게 메뚜기 이마팍만한 나라의 정치구도와 민심은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이회창씨는 선거 전후 대구에 오면 서문시장을 찾곤 했다. 그 때 마다 그는 시장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서문시장에서 남다른 감회를 느꼈음을 술회하기도 했다. 그는 다시 나서면서 서문시장 상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떠올렸는지 모른다. 그는 대구 사람도 아니고 박 대통령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 그를 열렬히 환영한 서문시장 상인들이 본의를 착각한다면 역사의 죄인이 된다. 민심은 무서운 것이다.
김재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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