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바리부인'은 1856년에 쓰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 소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회자됩니다. 각종 추천도서 목록에도 올라있습니다. 해마다 '보바리부인' 관련 논문이 전 세계적으로 쏟아집니다. 각종 문예사조에 빠뜨리지 않고 '보바리부인'을 결부시킵니다. 사실주의 소설의 문을 열었다는 문학사적 의미를 떠나 이 소설의 명성을 지키는 두터운 뭔가가 있다는 의미겠지요.
엠마 루오는 시골의사 샤를르 보바리의 아내가 되면서 '보바리부인'(엠마)이 됩니다. 엠마는 샤를르에 대해 '세련된 생활, 정열적인 사랑, 여러 가지 재주를 가진 사람'으로 기대합니다. 반면 샤를르는 사별의 경험이 있습니다. 엠마와는 재혼입니다. 샤를르의 생각은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엠마의 아버지가 부유하다. 엠마가 아름답다" 이들의 결혼은 시작부터 이렇게 달랐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입니다. 엠마는 토로합니다. "맙소사, 내가 어쩌자고 결혼을 했던가?" 이제 남편의 키스는 아무런 열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그저 습관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권태'를 타개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그대로 안주하던가, 탈출구를 찾던가. 엠마는 과감하게 후자를 택합니다. 매일 어떤 돌발사건을 기대하던 가운데 마침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남자 레옹을 만납니다. 문학과 음악에 대한 공통의 관심이 그들을 묶어줍니다. 그야말로 '플라토닉 러브'를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못합니다. 이번에는 호색가 로돌프를 만나 욕정에 빠진 여인으로 변신을 합니다. 로돌프가 떠난 후 엠마는 다시 레옹을 만나 밀애를 즐깁니다. 밀애는 항상 어떤 대가를 요구하더군요. 엠마에게 그 대가란 바로 돈입니다. 데이트비용은 전적으로 엠마가 도맡습니다. 호텔을 이용하고 사치품을 사고.
감당하기 힘든 빚이 엠마를 사면초가로 몰아붙입니다. 빚 독촉에 시달리는 엠마를 '정인'인 레옹과 로돌프 두 사람 모두 외면합니다. 엠마는 두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은 충격과 상처로 마침내 비소를 먹고 자살합니다. 샤를르는 아내의 외도를 눈치 채지 못한 채 그녀를 그리워하다 폐인이 되어 죽습니다. 딸은 친척에게 맡겨졌다가 공장에 여공으로 넘겨집니다.
사실 '보바리부인'의 내용은 지극히 간단하고, 통속적입니다. '바람난 부인의 자살극' 정도로, 실제 있었던 사건을 소설화 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인지 소설을 읽었든 그렇지 않든 '부인'하면 '보바리부인'을 떠올립니다. 에로틱한 영화에 등장하는 말 타는 장면, '말을 사랑한 부인' 시리즈의 원조 격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요. 피아노 레슨을 핑계로 밀애를 즐기는 등 '바람피우기 생활백서' 몇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통속'이라는 잣대와는 달리 소설은 참으로 담담하게 쓰였습니다. 나와 무관한 사람 일을 무신경하게 지켜보는 것처럼. 당시에는 선정적인 묘사라고 지적된 부분 역시 "몸을 내맡겼다" 내지는 "계속 달려요"라는 식으로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는 수준입니다. 직접적인 성애 묘사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필화를 겪게 됩니다. 도덕적 문란과 선정성으로 법정까지 갔고 결국엔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이 소설이 낳은 한 가지, 바로 '보바리즘'입니다. 현실과 이상을 혼동하고, 현실이 아닌 이상 속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보바리즘'입니다. 현실 그 이상의 것을 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동시에 인간의 비극입니다. 보바리부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보바리즘'이 일정 정도 내재하고 있는 것일 테지요. 권태로움을 견디지 못해 다른 사랑을 찾아 나선 보바리부인처럼 '권태'라는 것을 누구나 경험합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매시간 매일 매달 말입니다. 권태로움을 느끼며 탈출을 꿈꾸는 우리 모두는 '보바리 부인'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남편 샤를르는 어떨까요? 어떤 순간에도 흔들림이 없는 엠마의 남편 샤를르. 그는 중요한 순간마다 졸거나 잠들어 있습니다. 엠마를 처음 만나러 가던 날 아침 말 위에서, 엠마와 자작이 춤을 출 때, 엠마와 레옹이 문학을 논할 때, 샤를르는 수면중입니다. 심지어 엠마와 로돌프가 자신의 진찰실에서 밀회를 갖는 그 순간에도 말입니다. 그의 '수면'은 권태로운 삶, 그 자체 입니다. 엠마가 권태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것과 반대로, 권태를 그대로 받아 안고 있습니다. 일절의 반항도 없이 자연스럽게 권태 속으로 녹아든 사람 같습니다.
'원하지 않는 삶'에 맞서는 방법은 각자의 걸음걸이만큼 다양합니다. 그래서 쉽게 가치판단을 할 수는 없습니다. 샤를르의 방식이든 엠마의 방식이든, 레옹이나 로돌프의 방식이든. 그러나 권태를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또 다른 삶, 과연 권태롭지 않을 수 있을까요?
◇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1821년 프랑스 루앙에서 출생. 신경발작을 계기로 학업을 그만두고 요양하면서 집필 시작.
'감정교육' '성 앙투안느의 유혹' 집필. 1856년 4년 반 동안 집필한 '보바리 부인' '뤼뷔 드 파리'지에 연재. 문학적 명성과 대중적 인기를 얻으면서 '살람보' '감정교육' '순박한 마음' 등 발표. 1880년 미완의 작품 '부바르와 페퀴세'를 남기고 뇌일혈로 사망.
전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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