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국 황산기행

'한 번 보면 다른 산은 눈에 차지 않는다'는 황산(黃山).

기묘한 형상의 괴석과 천년이 넘도록 비바람을 견딘 소나무, 산정에서 바라다보는 일망무제의 운해는 하얀 화선지에 먹의 농담을 한껏 살린 거대한 수묵화에 다름없다.

제일봉인 연화봉(蓮花峯1864m)과 제이봉인 광명정(光明頂'1840m), 제삼봉인 천도봉(天都峯'1810m)을 에두르는 천해(天海)를 중심으로 사방구역을 동해, 서해, 남해, 북해로 불리는 황산은 구름과 안개의 조화가 빚어내는 운치가 장관이다.

억겁의 세월을 품은 준봉들 사이로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운해가 살포시 내려앉으면 찰나의 시간에 기암절봉들은 구름바다 위로 떠 있는 한 점 작은 섬이 되고 만다. 이 놀라운 절경은 셀 수 없는 황산의 풍경 중 으뜸이다.

거대한 기암절벽과 저마다 특색 있는 황산의 준봉들은 상상을 초월한 신비로움을 선사한다. 이 때문에 무심코 등정로를 따라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그 장엄한 광경에 자지러질 듯 하다. 특히 절경의 최고봉에 달하는 서해 대협곡은 황산이 품은 신비한 모습이 그대로 녹아난다

그 등정의 길에서 만난 일몰과 일출의 순간. 수많은 준봉들이 발 아래에서 내달을 때'아하!'하는 인식의 대변환이 뇌리를 스친다.

장엄한 산세가 수묵화를 옮긴 듯한 것이 아니라 황산이 곧 수묵화의 원형이었음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온통 쪽빛이다. 버스가 통째로 지나갈 만큼 크고 높은 황산대문은 상서로운 붉은 기둥이 기암절봉을 떠받치는 지주처럼 웅혼하다. 몇 굽이 길을 돌아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대나무 숲이 자연터널을 이루고 있는 황산 초입. 바람은 상쾌하고 햇살은 청명하다.

버스에서 내려 20여분 걷자 자광각참(慈光閣站)이다. 이곳에서 본격적인 황산등정의 시발점인 옥병참(玉屛站)까지는 케이블카를 이용한다.

케이블카 창 밖은 거대한 바위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그 틈사이로 푸른 소나무가 수를 놓은 듯 절벽에 바짝 붙어 자라고 있다. 발아래는 까마득하다. 알싸한 흥분에 가슴이 질탕거렸으나 이내 황산의 유려한 수묵풍경에 압도돼 버린다. 비취빛 소나무 사이로 점점이 노랑, 빨강 물이 든 단풍나무는 한 폭의 자수와 같다.

◆천해의 첫 관문 옥병참과 하늘 계단길 천도봉

해발 1천 700여m가 넘는 옥병참이 사람들로 발 디딜 곳 없이 북적인다. 옥병참에서 천도봉(天都峯) 가는 길은 바로 천해(天海)의 절경을 볼 수 있는 주요 등정로다.

그 첫 길목에 있는 영객송은 황산이 자랑하는 빼어난 소나무들 중 최고 명송이다. 수령이 1천600여년을 넘는다. 거대한 바위절벽을 병풍삼아 한쪽만 가지를 뻗은 기이한 수형에 우듬지는 마치 양산을 펼친 듯 햇볕을 가려 오가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형상이다.

영객송 아래를 지나면서 길은 급전직하 내리막길이다. 거대한 암석을 뚫어 만든 터널 계단길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바위틈으로 이어진다.

황산을 둘러보는 모든 등정 길은 돌계단길이다. "황산에서 계단을 걸을 때는 경치를 구경 말고 경치를 구경할 때는 계단을 걷지 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돌계단은 위험하다. 때론 좁고 때론 무척 가팔라 허술한 난간에 의지해 발을 디뎌보지만 곁눈질로 내려다보는 아래는 곳곳이 천길 낭떠러지이다. 어찌 사람의 힘으로 이 많은 자연석을 깎고 다듬어 계단 길을 열었을까 의아하다.

숨을 고르려고 잠시 멈춘 자리. 거대한 바위가 하늘 높이 솟은 황산 안쪽의 봉우리들은 그야말로 장엄한 수묵화를 떠올리게 한다. 산정을 향해 내달리 듯 솟은 바위들은 멀리서 보면 물고기 비늘처럼 서로를 의지해 한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다. 그 사이사이를 뚫고 소나무들이 푸르름을 내세운다.

천도봉 오르는 초입. 돌계단은 거의 수직높이로 가팔라진다. 앞 사람 뒤꿈치만 보며 오르기를 40여분. 숨이 턱에 차고 바람은 난간을 쥔 손에 더욱 힘을 모으게 한다.

정상인가 싶어 고개를 들자 갑자기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붕어 등지느러미 형상을 띤 좁은 길이 턱 버티고 있다. 한 발자국만 헛디뎌도 아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벽이다. 하늘 향해 위용을 뽐내던 뭇 황산의 봉우리들도 이 지점에서는 모두가 눈 아래에 있다.

후들후들 외줄 타는 기분으로 건너 천도봉 정상에 서자 천해가 한눈에 든다. 황산비경이 1시간여 등정의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남는다.

◆다시 옥병참을 거쳐 서해 대협곡 가는 길

왔던 길을 다시 한 번 걸어야 했다. 옥병참에서 서해 대협곡 가는 길은 비록 돌계단길이긴 하나 오전 길보다는 평이하다. 기암괴석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물을 둘러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더한다.

한 쪽 귀퉁이가 안테나처럼 봉긋 솟은 휴대폰 바위는 반석위에 휴대전화를 꽂아 놓은 형상을 닮았고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에 자연적으로 양각된 구름 문양은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이 타던 근두운을 쏙 빼닮았다.

정면에 황산 제일봉인 연화봉이 보이는 백보운제에 다다르니 만지면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거북바위와 뱀 머리 바위가 비경을 찾은 내외국인들을 맞는다. 보수를 위해 폐쇄된 연화봉 오르는 길을 비껴 오어봉(鰲魚峯)으로 향한다.

오어봉은 커다란 물고기가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이다. 대강의 모양새로 붙인 이름이 아니라 정말 물고기처럼 생겼다. 여기를 오르기 위해선 일선천(一線泉)을 지나야 한다. 연화봉과 오어봉의 거대한 돌봉우리가 제 크기를 못 견뎌 쩍 갈라진 틈새 같은 일선천은 가파르고도 좁은 계단길. 20여분간의 힘겨운 발걸음을 옮긴 끝에 하늘이 열려 고개를 들자 어른 한 아름 크기의 둥근 돌공이 협곡사이에 걸려 있다. 하늘에서 선녀가 던진 공이란다.

황산을 오르내린지 4시간여 째. 오어봉 드넓은 바위꼭대기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니 해가 서쪽 수평선을 넘보고 있다. 황산 비경의 최고절정인 서해 대협곡을 건널 시간이다.

◆아! 서해 대협곡

서해 대협곡은 해심정(海心亭)에서 시작된다. 왜 하필 출발점 정자이름을 해심정이라 했을까. '서해의 마음자리?', '서해의 심장?' 이란 의미일까. 그렇다면 협곡이 무척 깊다는 말인데 어쨌든 부닥쳐보기 전까지는 모를 일이다.

협곡의 초입. 깎아지른 절벽 아래 끝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돌계단 길이다. 계단 폭은 왜 그리 좁은지. 한 번 들면 못 빠져나올 듯한 심연처럼 안은 어둡다. 몸은 절벽 쪽에 바짝 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저 밑바닥은 보이지도 않는다.

조심조심 내리막 계단에 익숙할 즈음, 숨겨진 황산 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깊디깊은 심연에서 솟은 듯한 원추형 봉우리들, 새들도 추락할까 두려워 날아들지 않은 협곡은 조용할 따름이다. 어디선가 돌이 구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땅에 부딪친 소리가 나질 않는다. 그 정적이 되레 가슴을 철렁거리게 한다.

거대한 바위굴을 지나자 신선이 건넜다는 보선교(步仙橋'해발1320m)다. 두개의 바위봉우리를 사이에 두고 공중그네처럼 연결됐다.

그 보선교를 통과하자 하늘마저 가리면서 눈앞을 가로막는 절벽, 길이 없다. 아니다. 깎아지른 절벽에 선반을 걸친 듯 좁은 인공길이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세상에 저런 곳에 길을 내다니…' 저린 오금을 억지로 추슬러 절벽난간을 어쨌든 건넜다.

얼마나 더 내려갔을까. 머릿속이 하얬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이번엔 오르막길이다. 또 그렇게 오르고 올라 날은 이미 어둑할 즈음. 머리 위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서해 대협곡의 종착점 배운정이다. 황산에 든 지 9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협곡을 휘감아 솟은 구름과 안개가 이 곳에 이르러 저절로 물리쳐진다고 해서 배운정(排雲亭)이다. 지나온 협곡을 돌이켜보자니 서쪽하늘이 일몰에 붉게 물들고 있다.

◆하늘에서 떨어져 꽂힌 비래석

산정에서 1박을 한 이튿날 새벽. 일출명소인 청량대에 오른다. 어젯저녁 서해로 잠겼던 둥근 해가 동해의 운해를 배경으로 그 붉고 밝은 기운을 토해낸다. 장관 그 자체다.

황산 제이봉인 광명정을 둘러보는 길은 어제 길 보다는 평탄한 편이다.

이 코스의 최고 볼거리는 비래석(飛來石). 높이 12m 무게 600여톤에 달하는 비래석은 바위 봉우리에 창이 내리 꽂힌 형상이다. 비래석에 앞서 커다란 바위벽인 회음벽은 메아리가 울려퍼지는 곳으로 유명하며 비래석을 지나 나타난 합장봉은 연신 두 손을 맞잡고 합장을 하는 형상이다. 합장봉에서 직진하면 광명정. 한 스님의 기도에 감동한 하늘이 한 줄기 빛을 내린 곳이라 하여 광명정이다. 흐르는 땀을 훔치며 광명정에서 바라본 연화봉이 홍소를 띤다.

▩황산=중국 남부 안휘성 동쪽에 웅장한 자태로 똬리를 틀고 있는 황산은 중국 10대 관광지 중 한 곳이자 90년 12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다. 80년대 초 등소평의 지시로 본격적인 관광지역으로 개발된 황산은 모든 등정로가 돌계단(14만~15만여개)으로 되어 있다. 특히 황산 동해 쪽으로 흐르는 비취계곡의 화경지와 녹색의 대나무 숲은 영화 '와호장룡'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황산 가는 길=대구공항 출발, 상해 푸동국제공항 도착. 이곳에서 버스를 이용해 황산이 있는 황산시 둔계구까지는 약 6시간 소요. 황산시에서 다시 차로 1시간 정도 가면 황산 초입에 도달한다.

중국 황산시 둔계구에서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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