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기담: 왕조실록에서 찾은 조선사회의 뜻밖의 사건들/ 이한 지음/ 청아출판사 펴냄
역사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얼마나 많은 삶의 진실을 담고 있을까.
TV사극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조선시대 사회를 보면 부녀자의 치마폭에 싸여 권력다툼이나 하는 한심한 나라, 또는 도덕적이고 근엄한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살아가는 이상향으로 그려지고 있다. 물론 이런 모습이 진실의 한 단면이기는 하겠지만, 조선시대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조선기담'을 쓴 이유에 대해 "역사는 재미없고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래서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만을 골라 묶었다는 것이다. '기담'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때로는 황당하고, 때로는 끔찍하고 잔인하며, 때로는 당혹스러운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태평성대로 알려진 세종대왕 시절 한성(서울)에서 방화가 유행하고 대화재로 전 시가지의 20% 가까이가 잿더미로 변했다는 것과 질투로 인해 끔찍하게 살해된 아름다운 여자 노비의 살인범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 성종 임금. 그러나 "양반이 노비를 살해한 것은 대죄가 아니다."며 살인범을 끝까지 감싸고 도는 조정대신들과의 갈등이 숨막히게 전개된다.
'용산에 버려진 두 발이 잘린 아이의 안타까운 사연' '왜장이 되어버린 조선의 재인' '사람의 배를 가르고 쓸개를 빼간 인간 구미호들' '비가 오지 않아 혁명에 실패한, 스스로 미륵이라 믿었던 사기꾼' '임금 시해 음모에 말려든, 종이로 은을 만들어 낼 수 있다던 연금술사' '망나니 왕자의 망나니 아들-양녕대군의 아들 서산윤 이혜' '환관을 사랑한 임금' '사도세자의 유복자를 자처한 요승 처경' '정약용에게 삼중소주를 연필통에 부어 마시게 했던 막가파 술꾼 정조'….
연애소설을 돌려보다가 왕에게 반성문을 쓴 선비들 이야기나, 젊은 시절 벌거벗은 채 여염집 규수를 성희롱했던 성균관 유생들(조선시대판 바바리맨). 이들이 훗날 선비들의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 됐다는 사실에서 마냥 고상하게만 생각됐던 '선비'에 대한 환상이 깨진다.
그런데 독자들을 더욱 진지하게 하는 것은 야사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이야기들의 출처가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점이다. 실록에는 왕의 위대한 치적이나 정치적인 사건들만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파장을 끼친 사건들이 때로는 소소하게, 때로는 자세한 정황까지 그대로 담겨있다. 태조부터 철종까지 500여 년간 일어났던 사실을 왕의 치세별로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이 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는 왕과 신화들의 유쾌한 대화와 나라를 뒤흔든 엽기적인 사건들을 자세하게 재구성하고, 실록에 수록된 대화나 보고서 등을 그대로 수록해 정확성을 더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숨막히도록 흥미진진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독자의 호흡이 끊기는 것이 아쉽다. 316쪽, 1만 2천 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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