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가짜의 눈물

이탈리아의 조각가이자 화가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젊은 시절 당시 피렌체 최고의 화가이던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도제로 들어갔다. 그 후 3년 동안 미켈란젤로는 선배 화가들의 그림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완벽한 가짜를 그렸다. 그림에 연기를 쏘이고 염색을 해서 오래돼 보이도록 조작한 것은 물론, 빌려온 원본 그림은 가지고 자신이 그린 가짜를 원본이라고 속여서 돌려주기도 했다.

미켈란젤로는 1496년에 '잠자는 큐피드'라는 실물대 조각상을 만든 뒤 친구의 충고에 따라 땅에 파묻기도 했다. 나중에 그 친구가 그 조각상을 파내 로마로 가지고 갔고 다시 땅에 묻었다 파내는 '유물 발굴' 과정을 거쳐 산 조르조 추기경에게 200크라운을 받고 팔았다.

그 대가로 미켈란젤로에게는 단 30크라운만 돌아왔을 뿐이었다. 뒷날 추기경이 작품이 가짜라는 걸 알고 돈을 돌려달라고 하자 세상 사람들은 추기경이 완벽한 예술품인 그 조각상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비웃었다. 이 일로 미켈란젤로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고 한다. 브라이언 이니스의 '발칙하고 기발한 사기와 위조의 행진'에 나오는 일화이다.

남의 작품을 위조하고 골동품 사기극을 벌이고도 미켈란젤로가 유명해진 것은 본인이 역사상 유례가 드문 천재였기 때문이다. 유의할 것은 미켈란젤로 같은 존재는 세상에 다시 있기 힘들다는 점이다. 천재들은 수많은 사람이 찬탄해 마지않는 뛰어난 작품을 양계장에서 달걀 꺼내듯 쉽게 만들어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떤 예술품이든 예술가에게 그 작품성에 버금가는 희생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평온하고 평범한 삶을 버리고 예술가의 운명이라고 불리는 형틀에 스스로를 얽어매고 난 뒤에야 만인의 숭앙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작품을 만들 수가 있다. 가능성이 있다는 것 뿐, 모두에게 다 해당되는 건 아니다. 미켈란젤로처럼 살아 있을 때 30크라운 분의 영화라도 누린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뛰어난 화상, 수집가들은 바로 이런 작품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투자하고 수집한다. 그런 작품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값이 올라간다. 구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림은 한정되어 있으면 위조를 하려는 사람들이 생긴다. 위조는 예술을 목숨처럼 여기는 사람으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악덕이다. 미켈란젤로의 친구 같은 수단 좋은 협잡꾼이 나타나서 큰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회유라도 하지 않는 한 감행하기 어렵다.

근래 박수근과 이중섭의 그림 수천 점이 대거 '발굴'되었다가 검찰의 수사를 거쳐 가짜임이 판명되었다. 이 중 수십 점이 수사 대상이 되기 전에 거래가 되었다는 게 흥미롭다. 한국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두 작가의 그림이라면 최소 수천만 원에서 수십억 원을 호가한다는 건 문외한이라도 알 터이고, 그만한 돈을 주고 위작을 사들인 산 마르조 추기경 같은 사람들은 최소한의 감식안도 가지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나라에도 미켈란젤로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일까.

누구라도 이름을 대면 알 만한 화가의 그림을 구매할 수 있는 수집가는 예술 애호가 가운데서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수집가끼리 시장에서 비싼 그림을 구매하는 건 '가장 비싼 형태의 소비행동'으로 구매자가 사회적으로 정상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하는데(리처드 코니프 '부자) 어떤 분야든 정상에는 많은 사람이 서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림 값이 많이 올랐다고는 해도 화가 중에서 생전에 그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경매시장에서 수집 대상이 되지도 못하고 별다른 후원도 없이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 대부분은 그들의 선배인 박수근과 이중섭처럼 곤궁하게 살아가고 있다. 세월이 좋아져서 쌀독 걱정은 면했을망정 인간적인 품위를 유지하면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이런 와중에도 진지한 예술가들의 고민은 삶과 살림이야 어찌되어도 좋으니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박수근과 이중섭의 위작을 그린 사람들 중 일부는 미켈란젤로처럼 한때 그림에 재능이 있다고 인정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단순한 위조 범죄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그들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흘리고 있을 눈물, 상상만으로 충분히 소설 감이다. 또 모른다, 얼마 뒤 '잠에서 깬 호동 왕자'가 대거 땅 속에서 출현할지도. 위작이 수천 점이었으니 가짜 유물도 수백 점은 되지 않을까.

성석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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