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역에 본부 하나 없던 서울 은행, 지방돈 꿀꺽

자치예산 경쟁입찰, BIS자기자본비율 낮은 지방은행 불리

대구시·경북도 등 각 지방자치단체는 각종 사업에 사용할 돈을 은행에 예치해둔 뒤, 필요할 때 꺼내 쓴다.

이 돈의 규모는 엄청나다. 대구시와 경북도의 경우, 내년 예산안이 4조 원을 넘어섰다. 예산항목에 따라 사용처로 들어가기 전까지 이 돈이 잠시만 은행에 머물러있어도 은행 입장에서는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은행들이 지방자치단체 등 행정기관의 '금고 지기'가 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는 이유다.

대구시내 및 경북도내 지방자치단체 금고는 그동안 지역에 연고가 있는 대구은행과 농협이 나눠 맡아왔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관련 규정이 바뀌어 경쟁입찰을 통해 '금고 지기'를 지정하게됐다. 이러자 최근 김천시 금고 경쟁입찰에서 지역은행인 대구은행이 수년간 지켜왔던 '특별회계' 금고를 신한은행에 내주고 말았다.

이런 상황속에서 '지역의 금고를 시중은행에 내줄 경우, 또다른 형태의 지역 부(富)의 유출이 일어난다'는 지역 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고지기 경쟁

지금까지 각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은 대구경북지역에서 가장 많은 지점망을 갖추고 있는 농협과 대구은행에 금고지기 자격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얘기해왔다. 하지만 최근 본격적인 경쟁체제가 도입돼 은행간 금고 유치가 '과열 양상'으로 번지면서 서울의 은행들이 잇따라 들어오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최근 김천시의 특별회계(이보다 규모가 큰 일반회계는 농협이 따냈음) 유치를 따낸 신한은행. 신한은행은 최근 공공금고를 따내기 위해 테스크포스팀까지 구성하는 등 '맹렬한 공세'를 펴왔다.

이에 힘입어 신한은행은 곧 낙찰자가 발표될 예정인 안동시 금고 입찰 심사에서도 1순위인 농협에 이어 2순위를 차지, 20년간 특별회계를 맡아왔던 대구은행을 3순위로 밀어내고 입찰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사정이 이렇게되자 현재 입찰심사가 진행중인 경산시와 성주군, 영주시를 비롯한 경북도내는 물론, 대구시 금고 입찰에서도 시중은행의 세력확대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우려를 대구은행은 내놓고 있다.

◆어떤 문제점이?

나름대로 금고 수성에 성공하고 있는 농협과 달리 대구은행이 고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행정자치부가 정해놓은 지방자치단체 금고 지정 기준에 따르면 외부기관의 신용조사 상태평가가 10점, BIS자기자본비율이 7점 등 시중은행에 비해 신용등급과 BIS비율이 다소 낮은 지방은행이 무조건 불리하게 돼있다. 제도적으로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대구은행 박종익 공공금융부 부부장은 "대구은행의 신용등급이 시중은행보다 다소 낮아도 대구은행 주식을 많은 외국인들이 보유하고 있을만큼 국제 기준으로도 은행 신용이 탄탄하다."며 "논리적으로 불공평한 심사잣대 때문에 지방은행이 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대구은행은 지난 2005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3년동안 대구시를 제외하고도 경북도내에만 모두 153억 원이 넘는 돈을 각종 후원 형태로 경북지역사회에 환원했다. '정말 할만큼 했다'는 것이 대구은행의 하소연이다.

이 결과 대구은행은 올해 지방은행 중 최대의 사회공헌(2004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449억 원 지출)을 해 전국 12개 은행 중 사회공헌순위 5위에 오르는 실적을 보였다.

반면 최근 잇따라 경북지역 금고입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신한은행은 다른 시중은행들이 대구경북에 지역본부를 두고있는 것과는 달리, 대구경북지역에 본부조차 없다. 때문에 '여태까지 지역에 관심이 있었느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신한은행 한 관계자는 "신한은행이 조흥은행과 통합하기 전에는 규모가 너무 작아 지역사회에 공헌할 여건이 안됐다."고 실토하면서도 "그러나 이제 조흥은행과 통합, '큰 은행'이 된만큼 이제부터는 공공 금고지기로서 지역사회에 큰 공헌을 하겠다."고 말했다.

◆바람직한 대안은?

이웃 일본의 사례를 보면 일본 지방자치단체의 금고는 지방은행이 사실상 독점(그래프 참조)하고 있다. 작은 지방자치단체로 들어가서야 지방은행 틈을 헤집고 일본 농협이 점유율을 다소 갖고 있을 뿐이다.

일본이 이같은 정책을 펴는 이유는 '지방의 돈은 지방에 머물고 있어야한다'는 논리 때문이다. 지방금고를 수도권에 본사를 둔 시중은행에 넘긴다면 지방의 부(富)를 수도권으로 넘기게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 일본은 1964년부터 '지정금융기관' 제도를 도입, 도도부현은 반드시 1곳의 지정금융기관을 두도록했으며 올해 현재 47곳의 도도부현 가운데 41곳(87.2%)에서 지방은행(1곳은 제2지방은행)이 도도부현 금고를 맡고 있다.

김영철 계명대 경제학 교수는 "지역의 돈은 지역에서 재환류되어야한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진리이고, 지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지방정부의 금고는 반드시 지역은행이 지키면서 지역에 다시 재투자하도록 해야합니다. 신용도 등을 통해 점수를 매기는 방법으로 지방은행과 시중은행을 평가, 금고를 준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우리나라 은행 중에 신용도가 나쁜 은행은 없는데 이런 잣대는 상식적으로 어긋난다."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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