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글읽기와 글쓰기] 둘째 과정:긴 글 개요 작성하기

지난주에 우리는 300~800자 논술의 개요 작성법을 살펴보았다. 한 번 더 강조하면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 문제에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는 문제의식을 찾아내는 것이다. 즉 '무엇'에 대한 글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출제자의 일관된 '관점'은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주어진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견해'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글이 가야 할 방향이며 개요를 짜는 큰 틀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짧은 글에서는 서론-본론-결론의 형식을 과감히 버리라고 했다.

그에 비해 1천 자 이상의 긴 글쓰기는 고전적 형태의 서론-본론-결론의 형태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이때 학생들이 가장 잘 범하는 우(愚)로는 첫째, 서론이 너무 길다. 사회적 문제가 나오면 '산업혁명 이후 --' 운운하며 시작하는데 산업혁명에서 시작하면 정보화시대에까지 오느라 너무 많은 분량을 허비하게 된다. 심하게는 서론이 글의 절반을 차지하는 학생도 종종 보인다. 둘째, 학생들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지 않고 제시문에 나와 있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재설명하려는 경향이 높다. 논제는 '--에 대해 네 생각은 어때?'를 묻는데 학생들은 '--는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서론은 길고 본론은 재설명하고 절반이 넘어가서야 황급히 자신의 의견을 쓰려니 근거는 빈약하거나 뒷받침 없는 주장만 남는 앙상한 것이 되어 결론에서 한 줄의 문장으로 일필휘지(?)식으로 주장을 마무리하고는 끝낸다. 아이고, 힘들다. 그러나 다 쓰고 나면 못한 말이 많다. 새로 끼워넣을 수도 없고, 놔두자니 아는 것을 못 적어 아깝고, 글은 만신창이가 되어 입장조차 왔다갔다 한다. 제대로 개요를 작성하지 못한 글의 말로다.

다시 개요를 정리하자. 개요는 글의 방향과 글의 논리와 글의 순서를 정하는 지침서로, 전체 논술 시간의 50%를 투자해야 하는 작업이다. 개요가 단단하면 실지 본문은 개요 문장을 2, 3개로 확대하는 것만으로 다 채워지게 된다. 이제 경북대학교 2008년 모의 논술 문제로 연습을 해 보자.

※ 아래의 세 물음을 중심으로 한 편의 논술문을 작성하시오.(분량은 띄어쓰기 포함하여 1,400~1,600자)

(물음1) 제시문 (가)~(라)는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 단위(영역)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기본 단위(영역)를 작은 것부터 가장 포괄적이며 통합적인 것까지 순서대로 설명해 보시오.

(물음2) 제시문 (마)의 내용을 참조하여 (가)의 밑줄 친 주장에 대해 평가해 보시오.

(물음3) 제시문 (가)와 (나)는 갈등의 발생 원인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각각의 관점에서 9·11 테러 사건의 발생 원인을 진단하고, 나아가 그러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시오

경북대학교 논술은 고맙게도 본론에 들어갈 내용을 다 제시해 주고 있다. 물음1)이 제시문의 독해 능력을, 물음2)는 보스니아 내전을 '문명충돌설'로 해석할 수 있는지에 대해 찬성 혹은 반대의 견해를 펴는 것이다. 물음3)은 9·11테러의 발생원인과 재발방지책을 묻는 것으로, 학생들의 시사 상식의 정도를 파악하면서 국제 분쟁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을 묻는 문제이다.

학생들은 물음1, 2, 3의 순서에 따라 사고하게 된다. 이때 각 물음을 독립적으로 보지 말고 긴밀하게 연결된 것으로 파악하여 전체 흐름을 확인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이번 논술은 '무엇'을 다루고 있는가? 보스니아 내전, 9·11테러. 모두 국제적 분쟁과 갈등이네. 그럼 출제자가 묻는 것이 무엇인가? 원인과 대책을 말하라고? 그렇군. 국제적 갈등과 분쟁을 바라보는 관점을 정하고 구체적인 사건을 어떻게 판단하며, 나아가 그런 일들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논하라는 것이군. 그럼 어딘가에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있을 텐데. 물음1)의 단위 문제는 왜 나왔을까? 가장 큰 단위가 현대 사회는 제국으로 제시되었는데 이것이 다음 문제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문명충돌설과 경제적 이익 추구설 중 9·11테러를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이론일까? 내가 보기에는 서로 경제적인 침탈만 없다면 상대가 무슨 종교를 믿든, 어떤 문화 양식을 가지고 살든 서로 충돌할 것이 없어 보이는데. 미국과 아랍권의 분쟁도 겉으로는 종교적 문명적 충돌로 보이지만 실지로는 경제적 수탈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그래! 이것으로 방향을 정했어! '현대 사회의 국제적 갈등과 분쟁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이익의 갈등에서 발생한다. 이것에 종교적 명분이 덧붙여져 그 본질을 흐리게 하는 것이다.' 이게 나의 주제 문장이다.

문제를 읽고 떠오르는 모든 생각들을 정리하다 보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에 대해 --한 이유로 --한 입장을 취해야겠군." 갈 길이 정해졌다. 이제 다리 하나씩을 놓자. 경북대 문제의 경우는 주어진 순서대로 본론에 배치하는 것이 제일 좋다. 이것을 표로 나타내면 오른쪽과 같다. 학생들은 여기서 사고의 순서를 유심히 봐 주길 바란다.

결론을 제일 먼저 생각하고 서론은 제일 마지막으로 생각한다. 학생들은 무의식적으로 개요를 짤 때 서론을 먼저 생각한다. 아 뭐라고 시작을 하나? 가야할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으니 시작할 엄두를 못 낸다. 그러면서 여전히 '서론을 쓰면 글의 반을 쓴 것'이라는 말을 믿고, 미리 외워둔 '서론을 폼 나게 쓰는 몇 가지 유형'을 재생하고자 애쓴다. 그러나 새로 기억하기 바란다. 개요를 작성하면서 제일 먼저 결정해야 할 것은 결론이다. 논제를 관통하는 문제의식 파악과 그에 대한 입장 정하기이다. 논술에서는 결론을 정하는 것이 글의 반을 해결하는 것이며, 결론이 정해지면 결론에 있는 개념어(국제적 분쟁)에 대한 구체적 예(미국의 이라크 침공)를 제시하거나 포괄적인 상황 설명(세계대전이 자제되는 반면 국지적인 분쟁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으로 서론을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처음과 끝이 일관성을 지니게 된다.

이금희(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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