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이 노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자살을 했다.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1948년 대구에서 봉제공의 아들로 태어난 전태일은 생계를 위해 열두 살 때부터 날품팔이를 시작했다. 평화시장 미싱사 보조로 들어가 일하다가 1969년 재단사 모임 '바보회'를 만들었다. 또한 그곳 근로자들이 노동을 착취당하는 현실을 보고 '삼동친목회'를 결성, 근로조건개선을 요구하는 활동을 계속했다. 하지만, 이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분신자살을 한 것이다. 이후 그의 분신사건은 한국 노동 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그의 장례식은 '청계피복노조' 결성지원, 근로자 정기건강진단, 일요일 휴무 등 그가 생전에 요구했던 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그의 어머니의 주장을 당국이 결국 받아들인 20일 뒤에 치러졌고, 청계피복노조가 그해 11월 27일 출범했다.
또, 노동문제가 신문과 잡지 등 매스컴에서 주요한 소재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대학생들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1995년 장쩌민 주석 한국 방문 ▶1999년 대구시교육청 제1회 인터넷정보검색대회
정보관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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