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요즘 따뜻하십니까?

주유소를 운영하는 정 사장, 얼마 전 이른 한파가 몰아칠 때 "기름 두 통 갖다 주세요."하는 주문을 받고 여느 때와 같이 두 드럼 분 기름을 싣고 배달을 갔다. 그러나 정 사장을 맞이한 아주머니는 배달해 온 기름이 '두 말(40ℓ)'이 아닌 것에 당황했고, 정 사장은 주문량이 '두 드럼(400ℓ)'이 아닌 것에 당황했다.

겨울 가정 난방용 기름은 '두 드럼' 주문이 많은 까닭에, '두 말'을 주문했다는 아주머니의 말 때문에 그가 당황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달랑' 기름 '두 말'을 시킨 집 안에는, 일곱 살부터 두 살배기까지 세 명의 아이가 강풍이 몰아치는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냉방에서 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연을 짐작한 정 사장은 같이 온 종업원에게 "두 드럼 넣어라."고 했고, 깜짝 놀란 세 아이의 엄마는 돈이 없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이래 추븐 날에 아아들 감기라도 들면 우짤라고 저래 냉방인교. 내 안 봤으면 몰라도 본 이상 그냥은 못가겠고, 아뭇소리 말고 받으소!"

그제서야 아이의 엄마는 세 아이를 두고 남편이 가출한 뒤로 생활이 어려워져 지금까지 내내 냉방에서 지냈다는 사실과,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아이들이 줄줄이 감기에 걸리자 결국 '두 통'을 주문한 거라는, 날씨만큼 혹독한 현실을 울면서 전했다.

'두 말'의 가격은 대략 4만 원, 아껴 쓰더라도 네 식구가 일주일을 넘기기 어려운 양이다. 평소 크게 화를 내거나 기뻐하는 성격의 소유자가 아닌 정 사장은 기름이 보일러 통에 풍풍풍 들어가는 사이 밖으로 나와서 끊었던 담배를 피워 물었다.

"차에 들어가는 휘발유나 경유는 둘째치고, 방에 때는 등유는 가격이 싸야 안 되나,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솟는데, 그라마 없는 집은 기름 안 때고 얼어 죽으란 말이가." 정부를 향해 원망을 쏟아내던 정 사장이 전한 서민들의 겨우살이다.

가정용 난방유인 등유는 도시 저소득층이 주로 사용한다. 아니, 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기름값이 워낙 오르기만 하다 보니 기름 보일러 집은 세를 못 놓아서 고민이다. 결국 세를 낮춰서라도 방을 내놔야 하고, 한겨울 난방료를 생각할 겨를이 없는, 당장에 돈이 없는 저소득층은 세가 싼 집에 둥지를 틀게 된다.

어렵사리 집 한 칸을 마련한 서민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난방료가 싼 도시가스를 사용하고 싶지만, 배관공사와 보일러 교체 등을 포함한 공사비가 한 가구 기본 250만 원에 추가 가구당 100만 원으로, 4가구가 사는 집이라면 최소한 550만 원이라는 돈이 든다.

이러자니 돈이 없고, 저러자니 난방료가 비싸고, 난방료를 둘러싼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서 냉방에서 떠는 세 아이들은 비단 그 집뿐이었을까?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유류세의 기능은 비단 조세에 그치는 건 아닐 것이다. 유류세 인하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런 기능을 도시 저소득층에게 대입시켜보면 문제는 달라진다.

때마침 사상 초유의 국제유가 배럴당 100달러 시대를 앞두고 지난주에 나온 정부의 고유가 대책 가운데 환영할 만한 내용이 눈에 띈다. 내년부터 저소득층이 주로 사용하는 등유에 붙는 판매부과금이 폐지되고 특별소비세가 낮아져 등유가격이 ℓ당 80원 정도 내릴 것이라는 얘기다.

겨울 나기에 든든한 '두 드럼 정책'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유류세와 별개로 저소득층 지원 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용했다는 측면에서 정부의 결정이 반갑다.

없는 사람에게는 차라리 여름이 낫다는 말이 있다. 잦은 비에 고온과 높은 습도 때문에 불쾌했던 지난여름을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저어지지만, 기름값 때문에 아이 셋을 냉방에다 재워야 했던 그 엄마를 생각하면 고개가 쉽게 주억거려지는 겨울 초입이다.

등유 이야기를 했지만 다시 연탄 때는 집도 늘고 있고, 난방이 아니라 먹고사는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빈곤층도 늘고 있다. 12월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 우대, 특히 서민 환영'이란 선정적인 공약들이 문자 그대로 사태를 이룬다. 앞으로 5년 동안 국정을 책임질 대통령은, 찬바람 부는 서민들의 삶 깊숙이 들어와 '따뜻하십니까?'라고 물어볼 수 있는, 진정한 서민 마인드를 가진 그런 사람이었으면 참 좋겠다.

최경화 경북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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