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최정례 作 '스타킹을 신는 동안'

스타킹을 신는 동안

최 정 례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다는 듯이

본처들은 급습해

첩의 머리끄뎅이를 끌고 간다

상투적 수법이다

저승사자도 마찬가지다

퇴근해 돌아오는 사람을

집 앞 계단을 세 칸 남겨놓고

갑자기 심장을 멈추게 해 끌고 가버린다

오빠가 그렇게 죽었다

전화를 받고

허둥대다가

스타킹을 신는

그동안만이라도 시간을 유예하자고

고작 그걸 아이디어라고

스타킹 위에 또 스타킹을 신고

끌려가고 있었다

'오빠'란 말을 나는 속속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누나가 없어도 '누나'란 말은 조금 알 듯한데, '오빠' '언니' 따위 말은 도무지 감조차 생기지 않는다. '오빠'란 말을 들어본 적이 물론 없진 않다. 예전 피 펄펄 끓던 시절 술집에서 더러 들어보기도 한 말. 뜨거운 입김으로, 코맹맹이 소리로 불러대던 그런 호칭은 물론 아닐 것이다.

'오빠'란 말에는 천가지 만가지 감정이 녹아들어 있을 것이다. 소리 내어 한번 부르기만 해도 금세 가슴이 울컥거리는 '아버지' '어머니' 같은 말과는 또 다른 감정. 그런 오빠가 집 앞 계단을 세 칸 남겨두고, 다정했던 오빠가 "나 간다" 한 마디 던져주지 않고, 덜컥, 다시 못 볼 곳으로 갔으니―.

도무지 뭔가? 죽음은 왜 항시 본처이고 우리는 왜 늘 첩인가.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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