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 한 가지 소원

어떤 여자가 해변에서 빈 병 하나를 발견했다. 여자는 그것을 윤이 나도록 문질렀다. 그러자 병 속의 요정이 펑 하고 눈앞에 나타났다. 여자는 세 가지 소원을 빌 수 있는지 물었다. 요정이 애석하다는 듯 말했다. "유감스럽게도 인플레이션과 불황 때문에 한 가지 소원밖에 들어줄 수가 없네요" 여자가 말했다. "중동에 평화가 왔으면 좋겠어요" 요정이 지도를 들여다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이 나라들은 벌써 천년 전부터 싸우고 있어요. 내 능력으로는 어려우니 다른 소원을 말해보세요" 여자가 다시 말했다. "좋아요. 나는 여태껏 제대로 된 남자를 찾지 못했어요. 감정이 섬세하고, 친절하고, 요리하는 것을 즐기고, 집안일도 도와주고, 잠자리에서도 훌륭하고, 스포츠 중계방송만 보며 앉아 있지도 않고…. 그런 남자를 반려자로 구해주세요" 긴 주문을 다 듣고난 뒤 요정이 다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까 그 지도 다시 펴봐요!"

누구나 저마다 소원이 있다.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끝내 안 이루어지는 소원들도 있다. 예쁜 소원도, 귀여운 소원도 있고, 머리에 꿀밤 한 대 딱 때리고 싶게 얄미운 소원도 있고,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소원도 있을 것이다.

만약 어느 날 홀연히 누군가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면 뭐라고 말할까. 돈이 비처럼 쏟아지기를, 다시 젊음을 되찾을 수 있기를, 모니카 벨루치 같은 미모에 비욘세 같은 몸매, 아니면 죽 뻗은 승진 가도, 학문적 성취, 멋진 배우자…. 막상 한 가지만 꼽으란다면 꽤나 망설여질 것 같다.

사고로 장애인이 된 한 청년은 '24시간의 건강함'이 주어진다면 하고 싶은 것들을 이렇게 펼쳐놓았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 조깅을 하고, 목욕탕에 가서 시원하게 냉수욕을 하고, 예전에 즐기던 바다에 가서 스킨스쿠버를 즐기고, 오후에는 숲속 그늘 밑에 앉아 책을 읽고, 저녁엔 친한 친구들과 만나 사소한 일상의 대화를 나누며 저녁 식사를 하고 싶다'고.

대입 수능시험을 앞두고 전국의 사찰과 성당, 교회에서는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부모들로 붐빈다. 팔공산 갓바위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인파로 밤낮이 따로 없다. 삭신이 파김치가 되도록 두손 모으는 사람들. 오로지 한 가지 소원을 두고 기도하는 그 순간만큼은 지금 겸손히 잎 떨구는 나무들처럼 낮고 낮은 마음으로 돌아가 있겠지.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들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 한 가지 소원이 부디 이루어지기를….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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