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옛글

"지리산은 백두산에서 출발한 맥이 남원에 이르러 도사린 것이다. 둘러싼 고을이 10여 개나 되고 주변을 돌아보려면 달포나 걸린다. 겨우 지나다닐 만한 길을 따라 들어가면 넓은 공간이 나오는바 청학동이라 부른다 했다. 내가 벼슬을 떠나 그곳으로 은퇴할까 해서 화엄사'화개현을 거쳐 찾아갔으나 좋은 경치만 확인했을 뿐 끝내 닿지 못했다."

고려 때 저술 '파한집' 중 일부를 요즘 어투로 풀어 써 본 것이다. 800여 년 전의 저자 이인로(1171∼1259)가 지리산에 대해 지금에 못잖은 지식을 가진 게 놀랍다. 그때 벌써 한반도 등뼈의 큰 흐름을 '백두대간'으로 제대로 꿰뚫은 것은 더욱 그렇다. 현대인들조차 겨우 20여 년 전부터야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시작했을 뿐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곧 맞게 될 2008년은 백두대간 역사에 뜻있는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일제에 의해 개념이 짓밟힌 뒤 오랜 세월 이름조차 잊힌 채 묻혔던 백두대간 되찾기 답사 종주 선풍이 시작된 게 20년 전 바로 그 해라 하기 때문이다. 옛글을 읽는 맛은 이렇게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데도 있는 듯하다.

"비 퍼붓는 것은 대개 놀러 나가는 날이고/ 하늘 개는 것은 거의 일 없어 멍히 있을 때다/ 배 불러 상 물리면 맛있는 고기가 닥치고/ 목 헐어 침 넘기기 어려워지면 술이 두둑이 생긴다/ 진귀한 물건을 싸게 팔고 나면 그 값이 폭등하고/ 해묵은 병 겨우 고치니 그때야 이웃에 의원이 나타난다."

이인로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규보(1168∼1241)의 저술 '백운소설'에 실린 '違心詩(위심시)'이다. 우리 선조가 700년이나 앞서 '머피의 법칙'을 설파한 모양새라고나 할까. 그러나 이규보는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집착이나 미련조차 경계한다. "큰 가뭄 끝에 비 온다고 가뭄 영 가는 것 아니고, 타향에서 친구 만나봐야 또 헤어질 수밖에 없느니라. 화촉을 밝힌들 부부가 생이별 말라는 법이 어디 있고, 과거 합격했대서 그게 우환의 시초 되지 말라는 법 어디 있느냐."

문득 떠오르는 게, 3수생이 3명이나 된다는 올해 대통령 선거판이다. "비록 늙더라도 수입만 두둑하면 기생까지 나를 따라나서지만, 한창 젊을 때도 집이 가난하면 아내조차 나를 깔본다"는 이규보의 또 다른 경고도 있었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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