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07 농촌체험] 청송 참소슬마을

옛 마을의 흔적, 도심을 유혹하다

청송으로 가려면 하늘까지 닿을 듯한 높은 재를 몇 개나 넘어야 한다. 어느 방향에서나 마찬가지다. 영천에서 가려면 노귀재를 넘어야 하고 안동에서 가려면 가랫재를 넘어야 한다. 흙먼지 날리던 길은 이제 콘크리트로 뒤덮여 옛 정취를 느끼기는 힘들지만 황금빛으로 갈아입은 낙엽송 숲은 순수함을 찾아 나선 도시인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이리 흔들 저리 흔들 굽이굽이를 돌 때마다 무게중심을 잃고 기우뚱대지만 이마저도 조만간 추억으로만 간직해야 할 일이다. 머지않아 노귀재에 터널이라는 현대문명이 자리 잡으면 옛 추억을 그리워하는 이들만 이 길을 찾으리라.

대구에서 2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파천면 덕천리 참소슬마을 역시 옛 모습 그대로다. 청송 심씨 본향답게 조그만 개울을 따라 길게 늘어선 마을에는 심부자댁으로 널리 알려진 송소고택을 비롯해 학산정, 초전 고택, 창실 고택, 세덕사 고택 등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택들이 즐비하다. 흙담 너머 갓 쓴 선비의 낭랑한 책 읽는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사과 주산지임을 증명하듯 길가에는 탐스러운 빨간 사과가 가지마다 주렁주렁, 수확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체험객들에게는 다행이지만 올 여름 일조량이 적었던 탓에 평년보다 1주일 정도 수확이 늦은 까닭이다. 모두들 꽃눈이 다칠세라 조심조심 사과를 따고 어느새 바구니는 가득 찬다. 주인이 볼세라 몰래 입에 가져가기 바쁘지만 마음씨 좋은 과수원주인 할아버지는 말없이 웃음만 지어보인다.

저녁 식사로 나온 백숙에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숟가락질에 여념이 없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약수로 만들었으니 맛은 좋을 겁니다." "이렇게 맛있는 백숙은 처음 먹어봅니다. 다음에 오면 또 해주실 거죠? 하하하."

저녁상을 물린 뒤 체험관에서는 새끼 꼬기 대회가 이어진다. 어릴 때 기억을 애써 되살려보는 부모들이나 난생 처음 해보는 코흘리개들이나 모두 열심이다. 마당에선 어느덧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잘 익은 군고구마와 막걸리 한 잔에 산촌의 밤은 깊어간다.

이튿날 아침, 상쾌한 아침바람을 맞으며 송소고택 마당에서 복토 훔치기가 시작된다. 심부자댁 흙을 훔치면 그 집 복을 나눠 받을 수 있다는 민초들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는 전통놀이다.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야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있을까? 시작이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99칸 대저택의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는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다.

천연염색의 재료는 참 많다. 감, 쪽, 황토, 쑥, 양파, 솔가지, 홍화, 치자…. 하지만 이 마을에서는 사과 주산지답게 사과잎을 이용한 천연염색 체험이 인기다. 고사리손들이 오물락조물락 물들인 손수건이 파란 가을하늘 아래 나부끼는 모습이 청마 유치환의 '깃발'을 떠올리게 한다.

이 마을의 새로운 볼거리는 지난 10월 문을 연 청송양수발전소 홍보관. 발 아래 펼쳐진 단풍산은 눈을 즐겁게 하고 전기생산의 원리를 놀이를 통해 배울 수 있는 홍보관은 마음을 즐겁게 한다. "다음에는 아빠도 함께 왔으면 좋겠다. 그지?" "엄마, 내년 여름에 또 놀러와요, 네?" 온 가슴에 자연을 채우고 가슴속 깊이 순수를 담아 돌아가는 발걸음에 행복과 기쁨이 가득하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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