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산과 삶] 첫 번째-검은 고독 흰 고독/라인홀트 메스너 지음

"도대체 왜 그 위험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는 거요?" 1923년 에베레스트 원정 대원이었던 조지 맬러리는 한 강연회에서 질문을 받는다. 그는 대답한다. "그것이 거기 있기 때문에(Because it is there)." 얼핏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는 말처럼 선문답으로 들린다. 산을 오르는 사람의 마음은 깊은 산세만큼 가늠하기 힘들다. 올 겨울 산을 오르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

'현존 최고의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 그에 대한 수식은 화려하다. '세기의 철인' '알파인 등반의 개척자' 등. 메스너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미터급 14좌를 완등했다. 그의 이름을 유명하게 한 사건. 산소용구 없이 에베레스트에 오른 것. 그리고 낭가파르바트를 단독으로 등반한 일이다. 그는 최소 장비만 갖춘다. 중간캠프 생략, 고정로프도 없이 속공 등반한다. 짐은 스스로 짊어진다. 그는 '알파인 스타일'이라는 새로운 등반 방식을 만들었다.

이러한 그의 등정 방식에 대해 비난도 쏟아졌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에만 열중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변명하지 않는다. "나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 그 대신 산으로 가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들은 서로에게 너무 많은 답을 기대한다. 산은 모든 사람에 대한 대답을 가지고 있다. 그곳에는 매일 새로운 해답이 있다."

'검은 고독 흰 고독'은 그가 낭가파르바트 정상에 단독으로 오른 여정을 담았다. 원제는 '낭가파르바트 단독행'.

1970년 낭바파르바트 첫 번째 등정. 메스너는 동생과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하산 길에 동생을 잃었다. 그때 '검은 고독'이 찾아왔다. 그가 말하는 '검은 고독'은 느닷없이 터져나올 경우 스스로를 죽이는 힘이다. 아무도 없는 산 속 싸늘한 텐트 안에서 느끼는 공포, 두려움처럼. 절벽을 오르는 순간 '검은 고독'과 마주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려올 수도, 다시 올라갈 수도 없다. 아내와 이혼 후 고독의 빛깔은 더욱 짙어진다.

1973년 메스너는 두 번째 오른 낭가파르바트에서 또다시 '검은 고독'을 마주한다. 발아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이다. 공포를 느끼는 순간 그는 나약한 인간이 된다. 동생의 시신이 얼어붙어 있는 곳, 부인과 헤어진 상처로 흐트러진 마음. 결국 그는 등정을 포기하고 하산한다.

1978년 여름, 메스너는 세 번째 낭가파르바트로 향한다. 암벽에 박는 볼트'하켄은 물론 산소흡입기 조차 그에게는 '트릭'에 불과하다.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파트너도 거부한다. 진정한 '나' 완전한 '나'를 찾기 위해 혼자 등정한다. "사람들은 낭가파르바트를 '운명의 산'이라고 부른다. 인간 대 산, 즉 한 인간과 8,000미터 봉이 서로 조우하는 것이다.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을 증명하고 싶다."

15킬로그램의 배낭을 메고 베이스캠프를 나선다. 45도의 얼음 사면에 패인 홈을 긁어잡고 오른다. 오로지 산을 오를 뿐 생각할 틈은 없다. 위협적일 만큼 거친 날씨, 체력의 한계. 바위 장벽을 넘는 최단 루트를 선택한다. 이중 등산화는 투박하다. 손바닥만으로 바위 선반을 잡고 오른다.

"나는 산을 정복하려고 이 곳에 온 게 아니다. 또 영웅이 되어 돌아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는 두려움을 통해서 이 세계를 새롭게 알고 싶고 느끼고 싶다…고독이 더 이상 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고독 속에서 분명 나는 새로운 자신을 얻게 되었다." '흰 고독'이 그에게 찾아왔다. 그 고독은 두려움이 아닌 살아가는 힘이다.

낭가파르바트 정상, 그에게 강렬한 감정의 격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가 가진 고독의 상태는 그저 고요했다. 메스너는 계획했던 루트로 하산할 수 없게 됐다. 지진으로 무너져버렸다. 가장 비탈진 직선 루트로 목숨을 건 하산을 감행한다. 짐은 모두 버린다. 식량까지도. 납덩어리처럼 무거워지는 몸. 한번 앉으면 일어서기가 힘들다. 혼자 있다는 것, 자기 자신의 능력밖에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그는 낭가파르바트 '단독 등정'에 성공한다.

등반가는 매순간 죽음을 경험하고 새로운 삶을 맞는다. 만약 한번 쉬고 디뎌야 할 걸음을 단번에 옮길 경우 죽음에 이른다. 반대로 두려움에 한 발 뒤로 물러섰다면 삶이 있다. 그 사소한 선택에 생존이 달려있다. 이것이 등반가의 철저한 자기체험이다. 삶의 절망이 산 위에서 희망으로 바뀌는 것을 그들은 경험한다. 그 환희의 순간 자신의 안에서 신을 발견한다.

많은 등반가들의 목숨을 삼킨 '로체 남벽' 단독 등정에 성공한 토모 체센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간절히 바라던 것을 엄청난 노력을 들여 이룩한 적이 있는가? 바로 그때의 감정이 이 순간의 내 감정이다."

등반을 하지 않아도 좋다. 일상 생활 속에서 이런 감정을 느낀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산을 오른다. 우리 모두는 등반가다. 그대는 정상을 정복했는가?

◇ 낭가파르바트는...

낭가파르바트는 히말라야산맥 서쪽 파키스탄 북부 펀자브히말라야에 있는 산이다. 우르두어로 '벌거벗은 산'이라는 의미다. 별칭은 '디아미르'로 '산중의 왕'이라는 뜻이다. 고도 8,125미터. 그 남동벽은 수직으로 4,500미터 깎아지른 절벽이다. 1953년 독일'오스트리아의 원정대 헤르만 불이 첫 등정에 성공했다. 첫 등정에 성공하기까지 31명의 희생자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2년 6월 박희택, 김주현, 송재득이 최초로 등정에 성공했다.

전은희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