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왕'도 숨겨둔 돈 있었다

끊임없이 언론매체에 오르내리는 '기업들의 비자금 사건'. 기업활동 과정에서 불순한 의도로 사용할 목적으로 세금추적이 불가능하도록 특별히 관리해 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투명한 사회까지는 우리사회가 아직 갈길이 멀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런 비자금은 현대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 왕들도 '비자금'이 있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왕은 왜 쌈짓돈이 필요했을까?

△왜 왕은 비자금이 필요했을까?

모든 것을 소유한 왕. 하지만 그도 딴주머니를 차고 있었다. 왕이라고 해서 모든 돈을 공적인 곳에만 지출하라는 법은 없는 것. 경비지출은 공적 기구를 통해 제한을 받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쓸 곳이 있으면 그는 자신의 주머니를 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왕의 비자금은 대부분 왕족들의 사사로운 기대를 충족시키는데 사용됐다. 노년에 마음붙일 곳 없는 대비들을 위해 사찰을 중창하기도 했고, 왕비와 대비들이 상궁과 내관을 자신의 심복으로 만들기 위해 자금을 내어주는데도 왕의 비자금이 '돈줄' 역할을 했다. 또 출가한 자식들에게 가끔 인심을 쓰고, 특히 왕비나 대비의 경우에는 친정 식구들이나 고관대작의 부인들에게 체면을 세우기 위한 돈도 필요했다.

△비자금 마련의 비책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왕의 비자금의 출처와 사용용도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조선시대 왕의 비자금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드러나 있다.

조선시대 왕들이 막대한 비자금을 운용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태조 이성계의 덕택이다. 이성계는 고려 말의 무공으로 여러차례 공신에 책봉되면서 천문학적인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함경도 지역 땅의 3분의 1이 이성계의 소유였을 정도라고.

이를 '조선 왕실의 비자금'으로 묶어둔 것은 태종 이방원의 아이디어였다. 태종은 아버지의 재산을 국가의 것으로 편입하지 않고, 사유로 남겨둔 채 왕실재산으로 상속토록 결정했다. 이것이 조선시대 왕들의 '비자금의 원천'이 됐다.

△재산관리는 내수사에서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왕과 나'에서는 내시들의 수장인 조치겸이 내탕고의 재물을 사사로이 고리대를 놓아 이를 다시 채워넣으라는 조정 대신들의 압력을 받는 장면이 있었다. 조선시대 왕의 재산을 관리했던 것이 바로 내시었기 때문이다.

'내수사'(內需司)는 '내탕고'를 관리하는 내관들의 기구로 전국에 걸쳐 있는 왕실 소유의 토지와 노비들을 관리하고, 재산을 증식시키는 일을 담당했다. 내수사의 환관들은 왕의 토지에서 나오는 곡식으로 이자놀이(長利)를 했고, 심지어는 염전 운영권을 이용해 막대한 이윤을 남기기도 하는 등 폐단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탕고가 꼭 부정적인 면모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는 모든 일에는 자신의 사재를 털었고, 흉년이 들 때면 내탕고를 풀어 굶주린 백성들을 구하기도 하는 등 내탕고를 긍정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조선왕조가 유지되는 동안 신하들은 끊임없이 왕에게 이를 국고로 돌릴 것을 간청했지만 조선의 왕들은 내탕고를 포기하지 않았다. 내탕고를 관리하는 '내수사' 조직은 마지막 임금인 고종에 이르러서야 겨우 폐지됐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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