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비상금, 이렇게 생각한다

'비상금'의 본래 의미는 '뜻밖의 긴급한 사태에 쓰기 위하여 마련해 둔 돈'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 의미가 상당히 다양화하고 있는 실정.

올 초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비상금의 사용처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여성의 32.1%. 남성의 50.4%가 '자기계발과 취미생활'이라고 답해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주 5일제 근무가 확산되면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고, 부부사이에도 일거수일투족을 상세하게 밝히기 싫어하는 개인주의적인 경향이 짙어지고 있기 때문일리라. 또 여성의 경우에는 '쇼핑'(27.5%), '친정 부모님 용돈'(22.1%) 등이 뒤를 이었고, 남성은 '퇴근 후 소주 한잔'(22.6%), '가족 외식비'(11.5%) 순으로 조사됐다.

△비상금 Yes or NO?

인터넷 게시판 등을 살펴보면 "가계가 정말 어려운데 비상금이라도 내 놓아야 할까요?"라는 상담도 꽤나 많다. 정말 힘들 때를 위해 모아둔 돈이기 때문에 과연 지금이 그것을 써야할 적기인가를 묻는 것이다. 이는 가계에 합의된 '비상예비비'라는 계정이 없기 때문이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만약을 위해 일정액을 떼어놓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아예 돈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면 모를까, 알고 있다면 그 액수까지 감안해 살림살이가 운용되기 때문.

그래서 사람들은 의외로 '배우자의 비상금'에 대해 관대한 의견을 보였다.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최동기(42) 씨는 "아내가 비상금을 감춰뒀다고 해서 그리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아내 나름대로 쓰고 싶은 곳이 있을 것이고, 혹시라도 나나 아이들에게 위급한 일이 벌어졌을 때는 기꺼이 그 돈을 꺼내놓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진태(45) 씨는 "하다못해 아내의 생일선물을 하면서도 '여보, 나 몇 만원만'이라고 말을 할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냐."며 "이는 아내의 입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했다.

맞벌이 부부 중에는 '독립체산제'를 주장하는 의견도 꽤 됐다. 이현순(32'여) 씨는 "결혼하면서 모든 돈 관리는 남편에게 일임했지만, 그렇다고 월급의 전액을 내놓지는 않는다."고 했다. 회사에서 특별수당으로 지급받는 돈이나 부정기적인 보너스 등 급여외에 생기는 수입은 '내 돈'이라는 것이다. 이 씨는 "서로의 경제권을 어느정도는 인정해 주고 시시콜콜 간섭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배우자의 지출에 대해 너무 까다롭게 굴다보니 서로 불신이 생기고, 돈을 둘러싼 싸움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비상금에 대한 반대 의견도 있었다. 강모(43'여)씨의 경우에는 비상금 때문에 남편의 씀씀이가 더 헤퍼지면서 갈등을 겪기도 했다. 강 씨는 자영업을 하는 남편의 일정치 않은 수입에 대비해 3천여만 원의 비상금을 모아두었다가 '사업이 어렵다'며 끙끙 앓는 남편에게 내어준 적이 있다. 그것이 문제였다. 그날 이후로 남편은 걸핏하면 "또 숨겨둔 돈이 있지 않느냐?"며 "사업이 어려우니 좀 내놔봐라."고 윽박지르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녀는 "비상금이 화근이 돼 오히려 남편 씀씀이가 헤퍼지는 경향을 보여 지난해부터는 비상금을 포기하고 말았다."고 하소연했다.

김영현(가명'40'여)씨는 얼마전부터 남편의 용돈 액수를 상향 조정하고, 그 사용처에 대해서는 꼬치꼬치 간섭하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이전에 김 씨가 남편에게 지급했던 용돈의 액수는 월 40만원. 하지만 남편은 늘 모자라다고 이런 저런 명목으로 돈을 더 얻어갔고, 심지어는 카드빚까지 지고 있었다. 심한 배신감과 허탈감을 느꼈던 김 씨, 남편과의 한바탕 싸움 끝에 용돈 액수를 60만원으로 조정하는 대신 딴주머니를 차거나 몰래 카드 현금서비스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김 씨는 "남편도 문제가 있었지만 저 역시 너무 남편의 숨통을 조인 것 아니냐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며 "남편이 꼭 필요로하는 지출에는 좀 너그럽게 대해야겠다고 마음 먹게된 좋은 계기였다."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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