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지정학이 파헤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 월리엄 엥달 지음/ 서미석 옮김/ 도서출판 길 펴냄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에 이어 새로운 전쟁 상대로 이란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설이 흘러나온다. 이와 더불어 대체에너지의 새로운 대안으로 '핵 에너지'의 유용성이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또 있다. 구 소련 붕괴 이후 갑자기 중앙아시아 지역이 러시아, 미국, 중국의 눈길을 끌고 있고, 새로운 자원의 보고(寶庫) 아프리카는 석유에 눈독을 들인 열강들이 원조를 무기로 석유를 독점하려는 각축장이 됐다.
30년간 석유 지정학 문제를 집요하게 연구해온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비주류 경제학자인 저자는 20세기 역사를 '석유'의 눈으로 보고 있다. 내용은 충격적이다. 20세기에 빚어진 숱한 전쟁들, 즉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최근의 이라크 전쟁, 코소보 사태, 아프리카 내전, 영국의 아르헨티나 공격 등이 바로 석유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란의 팔레비 왕과 호메이니에 의한 정권 교체 역시 미국의 '석유정책'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국사회를 완전히 뒤바꿔 버린 아시아의 금융위기 역시 직간접적으로 '석유'와 연관이 있다. 미국은 그저 그런 패권국이 아니라 '석유 지정학'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왔으며, 또한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 중이다.
역사를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는 분명 영국의 세기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드레퓌스 사건은 단순히 독일과 프랑스 간의 문제가 아니라, 영국에 대적하여 협력을 모색하는 두 나라의 사이를 벌려 놓기 위해 영국정보부가 치밀하게 이 사건을 이용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이 중동지역으로부터 안정적인 석유 공급을 위해 부설하려던 베를린-바그다드 노선에 대한 영국의 저지에 의한 것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히틀러의 나치당이 집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영국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1930년 선거에서 겨우 600만 표밖에 얻지 못한 히틀러를 도운 것은 노먼(잉글랜드은행 총재)과 티아크스(잉글랜드은행 이사회 일원)를 비롯한 런던 지지자들의 국제적인 지원이었다. 이를 통해 영국은 독일이 소련의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리라고 믿었지만, 그 예상은 빗나가 독소불가침조약으로 새로운 세계대전을 맞은 것이다.
세계 석유 장악력을 확고히 하기 위한 영국과 미국의 10년 경쟁은 1928년 아크나카리 협정으로 동반자의 길을 걷게 됐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엑슨, 모빌, 걸프, 텍사코, 셰브론, 로열더치셸, 브리티시 등 영미 7대 메이저 석유회사들이다. 이 '세븐 시스터스(7자매)'는 이때부터 전 세계 석유 채굴과 정유, 판매에 대한 독점적인 권리를 행사한다. 이를 통해 곧 은밀한 세계 카르텔 가격을 정하고, 만약 이런 지배력을 깨뜨리려는 위협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응징을 가하는 데까지 이르게 됐다. 흔히 알려져 있는 제 1, 2차 석유파동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들 세븐 시스터스와 영미의 금융가, 그리고 이들과 결탁한 고위 정부관료들의 합작품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3개 축을 중심으로 한 브레턴우즈체제로 세계패권을 독점한 미국도 자신들의 석유 정책에 반하는 국가나 세력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응징을 가했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중동전쟁에 개입했고, 베트남 전쟁도 그 배후에는 '석유' 문제가 깔려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환경운동단체에 정치자금을 대는 미국 거대 금융가와 석유재벌의 모습은 가히 경악할 만하다. 급진적인 엘리트주의 성향의 '세계야생동물기금'과 독일 녹색당 창당의 숨은 주역이자 유럽 녹색운동의 선구자인 페트라 켈리조차도 이 '검은 돈'의 수혜자였다. 왜 석유재벌들과 거대 금융조직은, 특히 독일에서의 '핵 에너지 개발계획'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환경운동단체들을 이용했을까?
전문가들은 21세기 '세계 에너지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상북도는 동해안 에너지 클러스터 사업을 추진, 우리나라 에너지 문제를 선구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비전을 밝히고 있다. 이제 '석유' 지정학은 석유뿐만 아니라 원자력, 풍력, 태양광, 조력, 바이오 매스 등 다른 에너지원과 함께 '에너지 지정학'으로 변해가는 양상이다. 400쪽, 1만 8천 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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