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형익 대구교대 교수 "千山대학 드디어 졸업했어요"

13년간 1천여개 산 오른 등산 마니아 "이 정도 돼야 산에 대한 예의

'천산대학(千山大學)'을 아십니까.

대구공업대학 식음료조리과의 송형익(57) 교수는 '천산대학'을 졸업했다. 도대체 천산대학은 어디에 있는 어떤 대학일까. 천산대학 재학생은 전국에 산재한 1천여 개의 산을 오르는 등산마니아를 부르는 말이었다. 송 교수는 지난 8월, 1천 개의 산을 올랐다. 11월 현재까지 1천14곳의 산을 등정했다. 지난 1995년부터 꼼꼼하게 산행을 기록하기 시작한지 13년여만의 일이다. 매년 80개 정도의 산을 오른 셈이다. 천산대학을 졸업했지만 그는 요즘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배낭을 꾸려 새로운 산을 찾아 나선다.

설악산과 지리산, 태백산, 한라산 등 전국에 산재한 100여개의 명산을 다 올라가 보는 것도 어려운 판에 1천개의 산을 오르고도 그는 "자신보다 더 많이 오른 등산마니아도 수두룩하다."며 손사래를 친다.

축융봉(봉화), 가지산(밀양, 청도), 토곡산(양산), 구봉산(진안), 팔영산(고흥), 용봉산(홍성), 백아산(화순), 미륵산(통영), 구학산(제천), 세걸산(남원), 구병산(보은), 월여산(거창), 갑장산(상주), 백덕산(평창), 둔철산(산청), 가덕산(가평), 삼인산(담양)…. 산행일지를 훑어봤지만 처음 들어보는 산이 대부분이다.

그는 산을 다닐 때마다 꼼꼼하게 산행일지를 기록해왔다. 산에 가기 전부터 지도와 자료를 꼼꼼히 체크하고 산행을 할 때는 구간별 특성 등 모든 것을 다 기록한다. 그렇게 쌓인 산행일지가 1천여쪽이 넘었다.

그는 왜 이처럼 유명산은 물론이고 이름없는 산을 미친듯이 오르는 것일까.

악착같은 성격탓이라고 돌렸다. 매주 찾던 산의 숫자가 500개를 넘어서자 욕심이 생겼다. 1천개의 산은 올라야 '산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또는 다른 사람들이 1천개의 산을 올랐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오기와 욕심이 생겨났다.

그는 "산을 좋아하는데다 산에 오르는데 목표가 있으면 좋지않을까 생각했고 등산 마니아끼리의 경쟁심이 나를 부추겼습니다."라고 말하면서도 "교수로서 연구실적이나 논문으로 이름이 나는 것이 아니라 산에 미쳤다고 유명해질까봐 부끄럽습니다."고 했다. 1천개의 산을 오른 그는 자신보다 앞서 1천개의 산을 오른 동호인들과 함께 '1000산클럽'을 만들겠다는 생각도 내비쳤다. 송 교수는 산에 오르면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산행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며 "앞으로도 최소한 500개 정도는 더 오르고나서야 마무리가 되지않을까요."라고 말했다.

그는 전공(식품공학)과 관련, 환경과 식품안전에 관심이 많다 보니 산에 오르는 것도 자연과 더 가까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금껏 한 번도 산악회에 가입한 적이 없다. 혼자서 산을 찾다가 5년 전부터는 아예 마음맞는 동호인들과 함께 다니고 있다. "산악회에 가입하게 되면 안면 때문에라도 그 산악회를 따라다니지 않을 수가 없고 새로운 산보다는 유명산만 찾아다니게 되죠."

천산대학을 졸업했지만 아직 백두대간과 9개의 정맥을 종주하지는 않았다. 당장은 대간을 타는 것보다는 새로운 산을 찾아나서는 일이 더 즐겁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송 교수의 다음 목표는 산행가이드를 내는 일이다. 산행을 준비하면서부터 꼼꼼하게 자료를 체크하고 소요시간과 구간별 특징 등 모든 정보를 기록해둔 덕분에 전국의 모든 산을 떠올리면 한눈에 훤하게 들어온다.

"나 혼자서만 즐기지않고 산행정보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고싶어서 산행가이드를 만들어 '천산대학'의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을 뿐입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 부인·딸이 말하는 송 교수의 산 사랑

지난 10년 이상 남편과 아빠를 산에 빼앗긴 부인과 딸은 송 교수의 주말산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부인 김진옥(52) 씨는 "(남편을) 산에 빼앗겼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 "산에 다니면서 건강해지니까 오히려 좋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송 교수는 평일에는 퇴근시간에 정확히 집으로 돌아오는 '모범생' 남편이다. 주말쯤 산에 간다고 해서 가족을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딸 역시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오히려 엄마와 딸은 남편의 산행을 틈타 영화를 보러다니거나 쇼핑을 하고 혹은 해외여행에 나서고 있었다.

"우린 모녀지간이기도 하지만 선후배 사이기도 해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죠."

송 교수의 부인 김 씨는 경북대 사대 생물과에 73년에 입학했고 딸 하영 씨는 99년에 입학했다. 26년 후배인 셈이다. 김 씨는 상원고, 하영 씨는 서부고에서 각각 생물교사로 교편을 잡고 있다. 송 교수 역시 경북대 농화학과에서 미생물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니 사실상 세 사람이 같은 공부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씨는 딸이 같은 길을 걷고 있어서 참 좋다고 말한다. "엄마로서 참 좋아요. 딸한테서 많은 도움을 받아요. 나는 대학을 졸업한 지 오래됐지만 딸은 얼마되지 않아서 이런저런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아요. 서로의 관심사가 같잖아요."

하영 씨도 "엄마처럼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이 목표"라면서 "거기다 아빠처럼 좋은 남자가 생기면 더 좋겠죠."라고 말했다.

서명수기자

♠ 송형익 교수의 추천 산행지

송 교수는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대구에서도 가까운 군위와 의성군의 경계선상에 있는 선암산과 뱀산, 매봉산, 복두산, 북두산을 자신이 올랐던 1천여 산 중에서 으뜸으로 추천했다.

이곳은 육산과 암릉이 잘 조화된 곳으로 아기자기하고 지루하지 않다. 특히 매봉산~복두산 구간에서는 암봉과 바위전망대, 깎아지른 절벽에서의 조망이 뛰어나고 복두산~북두산 구간의 너럭바위 전망대는 탁트인 조망까지 제공한다. 소나무 오솔길도 호젓하고 봄 진달래와 가을 억새가 등산객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각 산에 정상석은 없지만 잘 정비된 등산로와 깔끔한 이정표가 산행을 편안하게 해준다. 5개 산을 한꺼번에 종주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계곡을 중심으로 선암산과 뱀산, 매봉산과 복두·북두산의 2개 구간으로 나누어서 산행할 수도 있다.

산행 후 북두산으로 내려오면 곧바로 빙계온천에서 산행피로를 풀 수도 있다.

▶산행코스

백암사-(1시간 10분)-주능선 삼거리-(15분)-선암산-(20분)-뱀산-(35분)-한티재-(25분)-매봉산-(25분)-452봉-(25분)-복두산-(25분)-552.5봉-(25분)-북두산-(35분)-빙계온천

총 산행시간=6시간(휴식, 점심시간 1시간 포함).

▶산행길잡이

-산행 들머리=의성군 가음면 현리리 백암사.

-산행 날머리=의성군 가음면 현리리 빙계온천.

-산행거리(도상)=약 10km.

-산행 후 이동거리=약 2.5km 시멘트 포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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