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구에서 가장 멋진 방탕아!/꽃가루방/조에 예니/현대문학
그저께는 수능일, 아니나 다를까 하늘은 흐려지고 바람이 불었다. 찻물을 올려놓고 창으로 내다 본 옆집 담 너머로 커다란 마른 잎이 툭 툭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지. 내겐 마치 일종의 상징적 통과제의(通過祭儀)로 여겨지는 항간에서 일컫는 수능일과 날씨의 함수관계, 그때부터 한기(寒氣)가 얇은 옷 속으로 스며들고 나는 '땅에 내려와 녹기 직전, 그 짧은 순간의 눈송이처럼 아프되 아름다운 성장의 시간을 겪을' 누군가들이 한없이 안쓰러워지기 시작한다.
18세 소녀 '조'는 캄캄한 침낭 속에서 피의 고동 소리를 들으며 악몽을 꾼다. 지하실에 갇힌 새처럼 그냥 그 안에서 빙빙 돌 뿐인 단지 그것뿐인 그 새들의 나날, 엄마는 예전에 아빠를 사랑했듯이 이제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하고는 훌쩍 떠나버린다. 나를 사랑하지만 히피처럼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던 아빠도 이제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조'는 그 어디에도 편입되지 못하고 떠도는 먼지 같은 존재.
'조'가 다시 찾아온 엄마는 사랑하는 '다른 남자'가 죽자 정원의 꽃부리를 가득 따다 온통 노란 꽃가루방을 만들어 그 안에 자신을 유폐시켜 버린다.(그 와중에 '새로운 남자'를 만나는 엄마! 오, 슬픈 엄마!) 엄마의 정신과 치료를 위해 시내를 오가다 만난, '조'와는 반대로 엄마를 병원에 유폐시켜둔 엉뚱한 '첼로 소녀' 레아와 밀워키행을 꿈꾸지만 불발된다. 커트 코베인을 틀어놓고 가망 없는 가수의 꿈을 꾸는 병든 청년, 엑스터시에 취한 광란의 테크노 파티, 차가운 지하실에서 새끼를 낳은 고양이들이 꽃가루방을 붕붕 떠도는 나비처럼 '조'의 곁을 스쳐간다.
엑스터시에 취한 레아의 독백 '저 위의 달에서 우리 둘만 살고 있다고 생각해 봐. 우리는 지구에 이런 엽서를 띄우는 거야. 여기는 아주 춥지만 생활은 마음에 듭니다. … 여기서는 지구가 작고 보잘것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다른 곳을 둘러보는 것이 좋을 거예요. 여기는 공간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답니다.'처럼 길고 검은 관 같은 침낭 속에 들어가 '죽을 수 있다면…' 중얼거리는 '조'.
누구나 대부분 다소 위태로운 십대를 거친다. 그때를 심하게 겪은 나도 이제는 기성세대에 속해 아이들에게 이 시기를 '견뎌라' 종종 주문한다. 다소 번역이 거친 듯한, 그래서 더더욱 불안한 십대의 우툴두툴한 터널을 실감케 하는 이 책처럼 다소 참담한 기분이 든다.
박미영(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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