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 덕담

여학교에 문학 강연을 간 적이 있다. 나로선 미처 생각지도 못한 '저자, 학교에서 만나다'란 거창한 프로그램이었다. 교장 선생님을 따라 전교생이 운집한 강당에 들어서는 순간 난 가슴 두근대는 고등학생으로 돌아갔다.

졸저 '하프플라워' 독후감 시상에 이어 강연과 즉석 문답으로 진행되었다. 체육관을 겸한 다목적 강당인지라 자리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태도는 참으로 진지했고 그 열기 또한 후끈했다. 마치고 나니 행운권 추첨을 직접 해달라고 했다.

함 속에는 학생들이 지은 오행시 '하프플라워'가 가득 들어 있었다. 열 명을 추첨해 행운상으로 학교에서 마련한 졸저를 주게 되었다. 한 학생이 책표지를 젖히더니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갑작스런 부탁이라 서명만 했더니 '한 말씀' 적어 달란다.

맞아! 기왕이면 그 학생의 이름 아래 기념이 될 만한 덕담 한마디를 쓰고 서명을 해주기로 했다. 학생의 이름과 얼굴에 가장 어울리는, 또는 평생 기념이 될 만하거나, 앞으로 살아가면서 삶의 나사를 단단히 조일 수 있는 말로 적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둔하게도 난 이런 경우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왔기에 참으로 당황스럽고 황당했다. '얼굴 가져 오너라, 이름 짓자.'란 말도 있지 않은가. 얼굴을 보여줘도, 이름을 알려줘도 그에게만 어울릴 덕담 한마디는 왜 그렇게도 꽁꽁 숨어버리던지.

이성계가 송악 저잣거리에서 파자 점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둘러 선 사람들의 어깨너머로 보니 한 사람이 물을 問(문)자를 짚었다. 점쟁이는 힐끗 쳐다보고 "문전에 입이 걸렸도다."하면서 아무래도 거지의 팔자를 면하기 어렵다고 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이성계가 다시 이 問자를 짚자 점쟁이는 이성계를 쳐다보고는 부들부들 떨면서 말을 못하더라는 것이다. 채근하자, 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리 봐도, 저리 봐도 君(군)왕지상입니다."하면서 예를 갖추었다고 한다.

사람이나 사물을 읽는 통찰력에 대해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연후라 그런지, 얼굴과 이름에 어울릴 만한 덕담 찾기는 퍼즐 맞추기보다 더 어려웠다. 학생들과는 비교적 자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에 내가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퍽이나 다양할 것 같았다.

그러나 한참이나 뜸을 들이고서야 몇 마디 적을 수 있었다. 그것도 몇 명이 지나가니 바닥이 나고 말았다. 내가 간신히 생각해 적어준 것은 기껏 '새 세대의 신사임당' '나날이 새로움으로' '아름다움과 열정의 소녀' 그 외 어떻게 적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심스럽게도 난 아직 그들에게 여성성을 강조하는 말들로 적은 것 같다. 글 쓰는 이에게 눈썰미와 순발력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겠는가. 나 자신이 덕담에 이렇게 약할 줄은 몰랐다.

젊은 어머니들에게 자식의 성공을 진실로 원한다면, 일주일 동안의 학원 과외보다 십 분간 조부모의 덕담을 듣게 하는 편이 낫다고 누누이 말해 오지 않았던가. 덕담의 효과를 누구보다 중시하는 내가 우리의 딸들에게 들려줄 말씀 한마디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난 왜 이렇게 한마디로 표현하는 데는 옴짝달싹조차 못할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딸의 초등학교 시절, 난 그들을 가훈상의 남남으로 만든 적이 있다. 아들에게 일러준 가훈과 딸에게 일러준 가훈이 달랐다. 부모 노릇 했다고 생일을 챙겨주는 아이들을 보면 지금도 미안할 따름이다.

명절을 맞아 집안대소간이 모여도 아래 세대들에게 바른 덕담을 들려줄 줄 모른다. 어른은 몇 푼의 돈으로 할 일 다 했다고 믿고, 아이들은 촌수보다 돈의 액수로 거리를 가늠하는 세태가 되어버렸다. 핵가족의 일원으로 어느 사이 내가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어도 어른인 줄 모르면서 살아가고, 제대로 어른 노릇을 해보지 않았으니 덕담인들 옳게 할 수 있었겠는가. 때맞추어 덕담 한마디라도 들려줄 줄 아는 참어른의 길은 아직 나에게 멀기만 하다.

장 호 병 수필가·계간 '문장'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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