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파리야스 포항 감독 "그라운드는 내 근무지"

▲ 포항 송라면 스틸러스클럽에서 만난 세르지오 파리야스 감독. 그는
▲ 포항 송라면 스틸러스클럽에서 만난 세르지오 파리야스 감독. 그는 "포항을 K리그 지존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포항스틸러스가 프로축구 K리그를 제패한 것을 두고 축구팬과 언론은 '가을의 전설' '5위의 반란' 등으로 표현했다. 시즌 개막 전에는 꼴찌급 전력으로 평가받았고 정규리그 5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포항이 4위 경남, 3위 울산, 2위 수원을 차례로 꺾고 결승에 진출해 마침내 1위팀 성남까지 연속 격파하고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 전설과 반란을 연출한 사람은 세르지오 파리야스(40) 포항 감독. 그를 15일 오후 포항 송라면 포항스틸러스 훈련장이 있는 '스틸러스클럽'에서 만났다.

초콜릿색 티셔츠와 회색 재킷, 그보다 약간 연한 색의 바지가 조화를 이룬 콤비 차림의 그는 패션모델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지난 이틀간 정말 잘 쉬었습니다. 꿈 같은 휴식이었죠." 3월 3일 개막전 이후 지난 11일 성남에서 열린 결승 2차전에서 승리해 우승을 확정지을 때까지 하루도 편하게 쉬어본 적이 없던 그는 12일 연고지 포항시민들이 열어준 우승축하 행사 이후 처음으로 3일간의 휴가 중이었다.

클럽하우스 1층 카페에서 기다리던 그는 기자가 들어서자 "당신이 달콤한 휴식시간을 방해한 사람이냐?"는 농담을 통역을 통해 던진 뒤 이내 "반갑습니다."고 또렷한 우리말로 인사를 건넸다.

"한국어 실력요? 이곳 생활 3년째여서 어디에 혼자 던져놓아도 굶어죽지 않을 정도는 합니다."고 했다. "다만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없어 팬들에게 늘 미안했다. 올 겨울에는 한국어 공부에 매달릴 작정"이라고 자신의 '윈터리그' 계획부터 밝혔다.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전, 우승 축하행사 등을 통해 올 한 해 동안 수없이 그를 만났지만 말쑥하게 차려 입은 모습(그는 경기장에 나올 때 항상 트레이닝복 차림만 한다)은 처음이어서 어색했다. 그래서 "왜 트레이닝복만 입느냐?"고 물었다.

"처음 받는 질문인데, 꼭 말하고 싶었던 것을 물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답했다. "직장에서는 근무복을 입는다. 그라운드는 내 근무지다. 따라서 운동장에 나갈 때 운동복을 입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그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잘 어울리는 차림 아닌가? 특히 우리 포항스틸러스 유니폼이 내게 가장 잘 어울린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성남과의 2차전 종료 호각이 울리던 순간, 그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와 통화를 했었다. 당시 장면이 떠올라 "누구와 어떤 얘기를 했느냐."고 물었다.(구단주인 포스코 이구택 회장쯤일 거라고 추측하면서 했던 질문이다) "아∼그거요? 아내(파트리시아·33)와 아들(이고르·6)·딸(라이사·13)이랑 통화했는데 그들이 앉아 있던 포항 관중석이 너무 시끄러워 아무 말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냥 좋은 말 했겠거니 하고 생각할 뿐이었죠."

인터뷰 내내 파리야스는 가족들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다. 이국생활의 불편함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며 생활하고 있는 가족들이 고맙고, 9개월여 이어지는 시즌 중에는 얼굴 볼 시간조차 내지 못하는데도 짜증내지 않는 그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했다. 그리고 12월 한 달 동안의 휴식시간에는 브라질 고향집에 가서 그들과 원없는 시간을 갖고, 모든 것을 할애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는 "포항 잔류(올해로 계약이 끝나지만 재계약이 확실시되고 있다)를 희망하지만 만약 가족들이 포항생활이 싫다면 연봉에 상관없이 즉시 이곳을 떠날 것"이라는 말로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5위에서 출발해 우승까지 플레이오프 6연승을 기록한 이른바 '파리야스의 마법'의 실체는 뭘까? 내내 웃던 그가 정색을 했다. '자연인'에서 축구감독으로 돌아왔다. "한국 축구 선수들의 최고 장점은 지도자의 지시를 잘 소화하고 잘 따른다는 것이고, 최대 약점은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라운드에서 그때 상황에 맞는 독창적인 플레이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인데, 포항 선수들은 이 부분에 대한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다. 이것이 막판에 확실하게 먹혀 들었다."고 말했다.

또 나이와 선후배 서열을 중시하는 한국의 문화(특히 체육계, 그는 마흔 살에 불과하다)가 불편하지는 않으냐는 질문에는 "주장 김기동 선수와 나는 다섯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코치들 중에는 선배도 있다. 경기장 밖에서 선배나 고참을 예우하는 것은 본받을 만한 좋은 전통이고 나도 많이 배우고 있다. 하지만 경기장에서는 능력과 역할이 최우선 사항"이라며 '능력' '효율' '실력' 등을 중요시한다고 했다. 스타급 선수 하나 없이도 K리그 정상을 정복한 원동력이 "능력을 키우고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올 시즌 마무리를 앞둔 그에게 마지막 숙제가 있다. 아마추어와 프로를 통틀어 국내 축구 최강자를 가리는 FA컵 결승전(1차전 25일 광양, 2차전 12월 2일 포항)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다. 상대는 포항의 아우팀인 전남 드래곤즈. 포항과 전남은 모두 포스코가 최대 주주인 구단이다. 그래서 더 치열한 승부가 예고되고 있다.

"반드시 우승한다. 우리는 우승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기에 K리그에서 우승했다. FA컵도 마찬가지다.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것이 진정한 프로다. 나와 우리 선수들은 '더블크라운(K리그와 FA컵 모두 우승)' 달성을 위해 오늘 이곳에 다시 모였다."며 FA컵 우승의지를 불태웠다. 그는 또 "선수와 지도자를 존경하고 항상 성원해주는 포항스포터스를 비롯한 팬들과 시민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우승컵을 들고 거리에 나서겠다."며 "그때 다시 한 번 카퍼레이드를 열어달라."고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며 그는 운동복으로 다시 갈아입었다. "프로는 오로지 성적으로 자신을 표현해야 합니다. 우린 프로입니다. 양보요? 프로에겐 그런 것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우리들의 몸값을 증명해 보여야죠."

포항·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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