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 때인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사하자 왜군은 조선에서 철군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접한 이순신 장군은 명나라 장군 진린과 함께 퇴로를 막기로 했다. 전남 순천에 진을 치고 있던 왜군 고니시 유키나가는 진린에게 뇌물을 줘 후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간청했고 진린은 이순신에게 왜군의 퇴로를 차단하지 말자고 권고했다. 이순신은 이에 크게 노하여 진린을 꾸짖고 함께 왜군을 치기로 설득했다.
고니시는 경남 사천과 남해에 있는 일본 수군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왜선 500여 척을 남해와 하동 사이에 있는 노량 앞바다에 집결시켰다.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은 노량 앞바다로 쳐들어가 적선 400여 척을 격파했고 아직 남은 왜선은 남해 방면으로 도주했다. 이순신은 필사적으로 적을 추격해 다시 적선 50여 척을 격파해 왜군은 불과 50여 척만이 도망칠 수 있었다. 그러나 추격 과정에서 왜군이 쏜 유탄에 맞고 이순신은 전사했다.
이순신이 자기의 죽음을 알리지 말고 적을 격파하라고 유언했기 때문에 조선군은 노량해전에서 승리하고 난 이후에 이순신의 전사 소식을 들었다.
▶1863년 링컨,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 연설 ▶1985년 한국, 남극자원보존협약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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