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승진시험 준비 공무원들 "우리도 고3"

경찰·소방직 시험 눈앞…도서관·학원서 책과 막판 씨름

"늦은 만큼 더 고삐를 당겨야죠."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5일 끝났지만 아직 시험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들이 있다. 승진시험을 앞두고 있는 직장인들이다. 보통 승진시험을 앞두고 1년 정도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은 퇴근 후와 주말에 독서실이나 대학도서관 등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다. 특히 외환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정된 직장을 선호하는 분위기를 타고 공직을 택한 '늦깎이 공무원'들에게 승진시험은 늦은 시작을 만회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라는 것.

2001년 당시 32세의 나이로 경찰에 입문했던 H씨(38). 경찰공무원 응시자격 나이제한인 만 30세에 겨우 걸려 경찰공무원 막차를 탈 수 있었던 H씨는 내년 1월 예정된 승진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1998년 이후에 대학을 졸업한 여느 외환위기 세대들과 마찬가지로 사회 생활 출발이 늦었던 H씨는 "나이 서른이 넘어 사회에 첫 발을 들여놓으니 상대적으로 정년도 남들보다 빨리 온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빨리 승진해 계급 정년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소방공무원 A씨(35)는 이미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24일 있을 승진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 A씨 역시 서른에 소방공무원에 발을 내디뎌 다른 친구들에 비해 사회생활이 늦은 편. 대기업 입사시험에 합격하고도 대기발령 상태로 지내다 소방공무원을 택했다는 A씨는 "늦은 시작을 만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승진시험"이라며 "경쟁률이 높은 좁은 문이지만 자연승진만 바라고 있으면 자기개발에 소홀해져 승진시험에 더 매달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들의 승진시험에 대한 준비는 '고3' 수험생을 뺨칠 정도다. H씨와 A씨 모두 비번인 날은 '책과 씨름하는 날'이라고 했다. H씨는 집 주변 독서실, A씨는 대학교 도서관을 이용해 시험준비를 한다는 것. 심지어 승진시험에 대비해 학원수강까지 한다고 했다. 이들은 "벼르고 벼르다 치르는 시험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스스로와 타협, 승진을 포기하게 된다."며 각오를 다졌다.

이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 "승진시험 대상자의 경우 예전에는 정년을 늘리려는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들의 전쟁터였지만 지금은 승진시험 기회를 확대하는 등 제도 변경과 더불어 세태도 많이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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