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의 美軍기지] (상)김천 '군수물자 폐품처리장' 논란

정체 알수 없는 시설 "무슨일 벌어질지 몰라"

"미군부대라는 것밖에는 몰라요."

김천시 아포읍 991are(3만 평) 부지에 미군 폐품처리장인 DRMO시설이 들어오지만 주민들은 전혀 아는 게 없다. 주민들은 "미군부대 아닌가요?"라는 막연한 얘기만 할 뿐, DRMO가 어떤 시설이며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환경문제 불거질 듯

김천시 아포역사에서 맞은편 철길을 건너면 미군 DRMO시설이 들어서는 부지다. 지난 16일 오후 포클레인과 대형 덤프트럭이 쉴새없이 굉음을 내며 기반공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인근 덕일아파트에 사는 박세영(33) 씨는 "미군부대가 들어온다고 들었다."고 했다.

기자가 "어떤 시설이 들어오는지 아느냐?"라고 묻자, 대부분 주민들은 "미군부대"라고 말했고 일부는 미군 범죄에 대한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에 근무할 미군은 4, 5명뿐이며 나머지는 군무원으로 인원도 50명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DRMO 시설은 무엇일까? DRMO(Defense Reutilization and Marketing Office) 시설은 주한미군에서 사용한 군수물자를 수집, 분배 처리하는 '미군 폐품 처리장'이다. 자칫 환경오염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기 때문에 전국 지자체들이 상당히 꺼리는 시설이다. 민병렬 민주노동당 부산진구 지방자치 위원장은 "DRMO가 미군 폐품을 처리하는 시설인 만큼 환경오염이 우려될 수밖에 없다. 경각심을 갖고 지켜봐야 하는 시설인데 김천시가 덥썩 유치한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부산 시민단체 관계자는 현재 개금동에서 운영 중인 미군 DRMO시설과 관련, "지난해초 부산 수정터널과 백양터널을 연결하는 고가도로 공사를 하다가 미군이 여기에 엄청난 양의 포탄을 매립해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폭발 위험성은 물론이고 토양이 상당히 오염됐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DRMO시설에 대한 정보공개를 미군과 국방부에 수없이 요구했지만 단 한차례도 받아들인 적이 없다. 일반 미군부대에서도 기름유출 등으로 토양오염이 심각한 것을 볼때 폐품처리장의 경우 훨씬 더 오염이 돼 있을 것이라는 추정만 할 뿐이다."고 했다.

예전에 일본의 미군 DRMO시설에서 암, 백혈병의 원인이 되는 전압기 절연체를 수년간 쌓아놓은 사실이 밝혀져 사회문제화되기도 했지만 한국에서는 시설의 용도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설'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국방부 관계자도 "시설의 구체적인 용도는 잘 모른다."고 했다.

고이지선 서울 녹색연합 팀장은 "정보공개가 훨씬 더 자유로운 일본의 경우에도 유독물질을 오랫동안 적재해왔던 사실을 감안하면 전혀 공개가 되지 않는 한국의 DRMO시설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두렵다."고 했다.

김천시는 5년전 주민 30여 명과 부산 DRMO시설을 둘러본 후 "아주 깨끗한 시설이었다."며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홍보해왔다. 당초 이 시설은 칠곡군에 건립될 예정이었으나 주민 반대와 협소한 부지 등을 이유로 무산되면서 김천에 들어서게 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자체가 적극 반대하면 이전이 불가능하지만 오히려 김천시가 유치노력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까?

주민들은 미군 시설이 들어오면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 주민 이기영(53) 씨는 "도로를 닦고 공사트럭들이 오가는 것을 보면 앞으로 이 일대가 많이 변할 것 같다."고 했다. 부동산 관계자는 "미군부대가 들어온다는 소리에 평당 25만 원 하던 땅값이 45만 원 선으로 올랐다."면서 "아포 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가 크다."고 했다.

정부가 DRMO시설이 들어서는 공여구역의 경계로부터 주변 3㎢를 '주변지역'으로 설정해 각종 주민편익시설을 제공하기로 했고, 국방부가 기반 시설 확충에 200억 원을 지원했지만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당초 국방부 지원액 200억 원으로 DRMO시설 인근의 제석리-국사리-송천리에 이르는 5.7㎞ 왕복 2차선 도로를 닦을 계획이었으나 아포 혁신도시 계획 등으로 지가가 상승하는 바람에 땅 보상비가 40여억 원 더 들어갔다. 김천시는 국방부 지원금으로는 도로 개설에 턱없이 부족해 별도의 예산 10억 원을 추가 편성할 계획이다.

김천의 한 시의원은 "두고봐야 알겠지만 DRMO시설이 고용창출과 지역 경제에 도움이 없을 경우 애물단지로 전락할수 있다."고 했다. 일시적으로 개발을 앞당기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향후 오염시설 유치로 인한 심각한 후유증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김창현 김천시 도시계획 담당은 "아포읍 일대는 지난 1993년 도시계획 결정 이후 예산문제로 지금까지 도시계획 도로 개설을 전혀 못했으나 DRMO시설 유치로 주거지 및 공업용지 개발에도 가속도가 붙게 됐다."면서 "DRMO시설로 인한 고용창출 효과는 크지 않겠지만 도로 개설, 물동량 증가 등으로 지역 발전의 기폭제는 될 수 있다."고 했다.

기획탐사팀=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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