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은 왜 보고 있나."
性澈(성철) 큰스님이 해인사 백련암에 계실 때 하셨다는 法語(법어)다.
근본과 본질을 따로 두고 껍데기 같은 虛像(허상)에 정신이 쏠려있는 것을 깨우치신 뜻으로 알고들 있다. 지금 대선 정국이 바로 달은 안 보고 손가락 끝만 쳐다보고 있는 꼴이다. 정책 공약이나 정당과 후보인물의 미래 지향적 역량 평가나 진단은 허공의 달처럼 따로 걸어놓고 온통 눈들은 허멀겋게 생긴 젊은 범죄 피의자의 입쪽에 쏠려 있어서다.
부처님이나 공자님 입이 아니다. 국민들이 들어보고 귀 기울일 만한 국민적 지도자나 나라의 큰어른 같은 인물의 입도 아니다. 384억 원을 횡령하고 외국으로 달아났다가 되붙잡혀온 서류 위조 전문 범죄 피의자의 입이다.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카메라 후레시 세례 앞에서 '와우!' 라고 외치는 탄성까지 신문 제목으로 뽑아내는 판이다. '사기꾼' 소리를 듣는 범죄 피의자의 입에서 나오는 탄성과 말 한 마디 한마디에 온나라의 정치권, 정당 단체, 언론들이 사생결단하듯 법석대고 있다.
대선주자들의 입들도 덩달아 거품을 문 채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제발 자기네에 유리하기를 목을 매듯하고 있다. 마치 범법자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느냐에 따라 한 국가의 대통령이 누가 되고 안 되고가 결딴날 것처럼 들뜬 분위기로 흘러간다.
대운하니 철도 공약 같은 더 큰 본질과 근본은 그게 껍데기 허상인지 거짓인지 가려볼 틈도 없다. 한 도망자의 입에 가려 뒷전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달은 제쳐두고 손가락 끝만 쳐다보고 있는 격이 아닐 수 없다.
그 입에서 나오는 말에 따라 특정 대선후보의 부적격 검증으로 대선 판의 판도가 뒤바뀔 수도 있으니 그 입이 껍데기(손가락)가 아니라 본질(달)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입소동의 근본적 요체는 진실이다. 그의 입에서 어느 쪽에 유리한 말이 나오든 국민들은 오직 '진실'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의 입이 진실을 말하지 않을 때, 그리고 검찰이 진실이 아님을 밝혀내지 못했거나 찾아낸 진실을 숨겼을 때 국민들은 손가락 끝을 보고 달이라 말하게 되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김경준의 귀국 직후 첫 마디는 "일부러 지금 온 게 아니라 민사소송이 끝나서 왔다"고 했다. 그러나 그 민사소송은 항소심에 넘어가 있다. 법적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붙잡혀 오면서도 첫 마디부터 국민들 앞에 거짓말을 한 셈이다. 귀국 첫 말이 앞뒤 틀리고 미국 여권을 7개나 위조하고 미국 州(주) 국무장관 명의의 법인 설립인가서를 19장이나 위조했다는 간 큰 피의자의 말을 과연 어디까지 믿어야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자연스레 나온다.
'갖고 왔다'는 서류가 외국 정부의 가짜 공문도 만든 위조 솜씨로 손쉽게 조작한 것은 아닐지 하는 의문, 또한 검찰이 불과 1주일 남짓 남은 후보 등록일 전까지 진실을 깨끗이 밝혀내고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명백한 증거를 찾아 보여줄지에 대한 의구심도 나올 것이다.
거기다 지난 대선 때 검찰이 야당후보의 패배가 확정될 때까지 사기 범법자의 입을 믿게 한 결과로 거짓 입이 이겼던 김대업 학습효과도 기억에 잠재해 있다.
이제 1주일쯤 뒤면 국민의 눈은 김경준의 입에서 다시 검찰의 입으로 옮겨갈 것이다. 그리고 검찰 입에서 나오는 말에 따라 다시 떠들고 나설 여'야 대선후보들의 입들을 쳐다보며 진실과 거짓을 가려야 한다. 선거권과 투표용지를 든 주인이 거꾸로 이 입 저 입 쳐다보며 암수 까마귀를 가려내듯 해야 하는 눈치고생이 이만저만 아닌 꼴이 돼간다.
원인 제공이 누가 됐든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그러나 나라의 미래를 바로 지키려면 국민이 더 깨어 있는 길밖에 없다. 침 발린 입'입'입들의 춤판 속에서 달을 보느냐 손가락 끝만 보느냐는 것은 결국 유권자의 몫이다.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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