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나일론 환자'와 인성교육

평소 잘 알고 지내는 후배가 교통사고가 났다기에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서울의 어느 병원을 찾은 적이 있다. 2주일 이상 입원 중이라 꽤 심각한 상태거니 미리 마음을 다잡고 후배를 찾았지만 그는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음에도 병실만 차지하고 있는 흔히 이야기하는 '나일론 환자'였다.

신호 대기 중 뒤차가 와서 사고를 냈기 때문에 전적으로 뒤차의 과실이며 목이 조금 뻐걱했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가해자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아서 입원 중이라며 보험료와 합의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인간성 하나만은 참으로 아껴왔던 후배였기에 사고 직후 일단은 뒷목부터 부여잡고 실랑이했을 그 모습을 상상하니 여간 실망이 아닐 수가 없어 퇴원을 종용하고는 이내 병실을 빠져나와 버렸다.

얼마 전 국내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의 70%가 부상 정도와 관계없이 입원수속부터 밟는다는 통계를 제시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일본은 교통사고 환자의 입원비율이 우리의 1/9 수준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가 보험금과 합의금을 얻어내기 위해 무조건 입원부터 하고 보자는 의식이 얼마나 팽배한지를 알 수 있다.

'일단 뒷목부터 잡고 그 다음은 드러눕고 보자'식의 환자와 일부 돈벌이에만 몰두하는 병원들의 상술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빚어내는 명백한 사기극이다. 그 보험금의 몫이 훗날 고스란히 우리들의 보험료에 반영되리란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근시안적인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정직 그리고 남을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는 미덕이란 온 데 간 데 없는 한마디로 '인성의 부재'의 현장이다. 그것은 곧 교육부재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근본적인 인성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법을 앞세우기보다는 올곧은 품성과 인격을 길러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인이 되게 해야 한다. 그런데 내 아이와 남의 아이의 학습능력 차이에는 마음을 졸이면서 정작 인성의 차이에는 무관심한 것이 현실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들도 올바르지 못한 사고와 언행으로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특히나 공직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보고 있으면 '나 하나쯤은…'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저지른 일 때문에 공직의 꿈이 좌절되어 버리는 일을 비일비재하게 볼 수 있다.

'나 하나쯤'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 '다른 누구 하나쯤'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얄팍한 속임수로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 '나일론 환자'가 늘어가는 세태는 결국은 우리 모두의 슬픈 자화상일 수밖에 없다.

배성혁(예술기획 성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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