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이선영 作 '시든 꽃'

시든 꽃

이선영

저 꽃의 영혼은

추워서 방으로 들어갔단다

겨울 집밖을 나서다 보니

시든 꽃 한송이

영혼이 저만 따뜻한 곳 찾아 들어가버린

아니면 시들어가면서 꽃이

영혼 먼저 들여보냈나?

영혼이 놓아두고 간

시든 꽃잎들은

이제 아무데로나 떨어져내릴 것이다

추위를 견딜 마지막 힘조차 잃었는가

방 안에서 잠시 쉬었다

봄이 되면

다른 꽃을 찾아들리

꽃들은 끝내 시들고

시들지 않는 영혼만이 천년만년 새로운 꽃으로 옮겨다닌다

따뜻한 방에만 있다가 현관문을 나서니 갑자기 겨울! 찬 바람이 쌩―, 몰아친다. 어깨 구부정한 나무들 입술이 시퍼렇게 얼어붙어 있다. 화단 응달의 돌멩이 이마에 핏줄이 새파랗게 돋아나 있다. 나무들은, 돌멩이들은 스웨터 한 장도 없이 어떻게 이 겨울을 견디려는 것일까. 문득 돌아다보니 국화꽃이 시든 채 축 늘어져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빛깔로 향기로 온 아파트를 환히 밝혀주던 꽃. 잎이 늘어지고 꽃잎은 칙칙하게 변색되었다. 누가 빼앗아간 것일까, 그 빛나던 시간. 안쓰러워, 안타까워서 생각해본다. 꽃은 비록 시들어도 영혼은 죽지 않으리라. 종교처럼, 신앙처럼 영원히 시들지 않으리. 천년만년 시들지 않는 꽃의 영혼. 장례식장 옆 산부인과 신생아실에는 오늘도 방싯 웃음이 꽃처럼 벙글고 있으리라.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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