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 그 집앞

'어제 이문동 지나가다 문득 암스테르담 찻집이랑 너네 하숙집 기억이 아스름~. 잠시 대학생으로 돌아갔었단다…' 친구의 문자 메시지는 마법처럼 먼 기억 속의 풍경들을 눈 앞에 불러냈다.

대학 졸업 후 강산이 두어 번 변할 시간이 흐른 뒤 학창시절을 보낸 동네에 가본 적이 있다. 짐작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이 달라져 있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낯설어 보였다. 그리운 건 그리운 대로 그냥 두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사노라면 때로 기억의 서랍 속에 간직된 곳들을 한번쯤 가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가보다. 한 친구의 어머니는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가기 전 혼자서 추억 여행을 하셨다. 이곳저곳 정들었던 곳을 두루 돌아보고, 외동딸이 처음 교편을 잡았던 시골 중학교까지 찾아본 후에야 대구를 떠났다.

우리 기억 중에는 자신의 특정한 경험과 함께 엮여진 것들이 많다. 음악을 들을 때, 음식을 먹을 때, 길을 걸을 때 반사적으로 함께 떠오르는 기억들!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은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 '아, 이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내가 세 살이었고 엄마는 요리를 하고 있었지' 라며 옛추억을 떠올리게 돼요."

무언가에서 점화된 기억,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또다른 기억들. 그것은 시공간을 가로질러 기억 속에 침잠해 있던 삶의 풍경들을 불러낸다. 소리를 보고, 색을 듣고, 말을 맛보는 共感覺(공감각, synesthesia)처럼 감각의 벽을 허물어버리기도 한다.

전국 어디랄 것 없이 재개발 붐이다. 서민층 주택가가 사라진 자리에 세련된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선다. 좋은 점도 있지만 많은 동네들이 제 분위기를 잃어가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어느 동네나 쌍둥이처럼 닮은꼴이 돼가고 있다. 확 변해버린 옛 동네를 보며 추억의 상실감에 혼란스러워하는 이들도 적지않을 것 같다.

아주 푹 익은 늦가을이다. 晩秋(만추)라고도, 窮秋(궁추)라고도 하는 계절. 뜬금없이 가곡 '그 집 앞'의 멜로디가 입안에서 뱅뱅 맴돈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전국이 아파트 공화국화돼가는 요즘 이 노래 가사처럼 누군가를 그리며, 가슴 졸이며, 서성거릴 '그 집 앞'은 어디일까. 주차장이 된 아파트 마당? 아파트 복도? 大入(대입)이 인생의 전부가 되다시피하는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훗날 '그 집 앞'의 기억은 대체 뭘까, 문득 궁금해진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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