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잦은 사회적 갈등과 대립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 성장·발전 지상주의적 개발시대에서 1987년 이후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주민 의견과 참여가 중요시되는 민주화 정착 초기단계에 진입했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민주주의의 이상이 실현되기보다는 '구태를 벗지 못한 권위주의 행정'이라는 비난과 '대안 없는 반대' '이기주의의 극치'라는 비판이 서로 대립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건설방식, 신서혁신도시 보상, 대구 북구 연경동 택지개발, 대구도심 재개발(재창조), 경북도내 시·군의 장사시설(화장장) 건립, 장례식장 입지…. 거의 모든 사업과정에서 추진기관들과 주민, 시민단체들의 이견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립과 갈등은 사업추진 주체와 주민이라는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들 간의 보상 규모에 대한 의견 차이만이 아니다. 생활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환경적, 사회·문화·정서적 문제들 역시 지역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갈등의 양상은 그만큼 더 복잡해졌고,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보다 다차원적 접근이 필요하게 됐다.
'지역갈등, 새 패러다임을 찾아서' 시리즈는 국내 지역갈등 사례의 전개 및 해결 과정과 해외 선진국의 갈등관리 사례를 찾아 분석함으로써,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지역사회 내 갈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인지 모색해 본다.
경기도 하남시는 지역갈등과 관련해 각 지자체는 물론이고 학계와 시민단체 등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곳이다. 지난 9월 20일 예정됐던 김황식 시장과 시의원 3명에 대한 사상 초유의 주민소환 투표가 하남시 선거관리위원회의 잘못(소환투표의 청구사유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수원지법의 판결)으로 위법판결을 받았지만, 주민소환선거대책위는 다시 주민소환추진위로 바꿔 주민소환 투표를 재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들은 헌정사상 최초의 단체장 주민소환 투표에 대해 '소신 있는 단체장'과 '지역민의 이기주의'가 갈등을 빚은 님비(NIMBY) 현상으로 간단히 진단했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광역 장사시설(화장장)을 유치하겠다는 시장의 계획이 주민소환 투표 추진의 한 원인이긴 했지만 그 이면에는 '나를 따르라'는 권위주의, 주민과 비전을 공유하지 못한 지도자의 독선, 이에 대응할 만큼 성장한 대항적 시민세력의 대두가 있었다.
민선 4기 하남시장으로 당선된 김황식 시장은 지역개발에 대한 의욕이 남달랐다. 시 전체의 90%가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는데다 상수원보호법과 문화재보호법, 수도권정비계획법 등으로 이중 삼중으로 묶여 있어 경기도에서 낙후지역으로 분류되는 하남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큰 꿈을 품었던 것.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했다. 경기도가 광역화장장을 유치하는 지역에 시설건축비 3천억 원 이외에 2천억 원의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제안한 것이 하남시가 장사시설 유치를 선언한 이유였다.
금광연 하남시 사회복지 태스크포스팀장은 "2천억 원의 인센티브를 기반으로 1조 4천억 원의 외국자본을 유치해 그린벨트 해제부지 56.2㏊(17만 평)에 복합단지와 명품아울렛 매장 600개를 건립하고 명문 중·고교 및 대학 유치, 세계적 영상 디지털 산학단지 육성 등을 통해 명품 관광도시 하남으로 키우겠다는 것이 김 시장의 비전이었다."고 설명했다.
금 팀장은 "하지만 화장장이 유치될 경우 도시 이미지가 떨어져 아파트 가격이 하락할 것을 우려한 아파트 주민들을 중심으로 반대운동이 시작됐고, 이로 인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악화됐다."고 덧붙였다. 주민들의 님비 현상이 사태 악화의 주요 요인이라는 주장인 셈이다.
그러나 주민소환선거대책위 관계자의 말은 관점이 달랐다. "우리도 화장장 이슈가 단체장 등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로까지 확대될지는 몰랐습니다. 반대하는 지역민이 많으면 대화를 통해 해결될 수 있을 줄 알았죠. 그런데 관례처럼 해오던 시의회 의장과의 의제 논의는 물론이고, 시의회에 사업내용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도 하지 않은 채 화장장 설치를 위한 주민투표 예산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는 것을 보면서 지역민들이 분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조중구 하남시 주민소환선거대책위 공동본부장은 또 "'맞아 죽더라도 하겠다' '반대쪽에서 삭발하면 나도 삭발하겠다'는 등 주민 감정을 자극하는 김 시장의 발언들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의 반발심리도 더욱 강경해졌다."고 말했다.
홍미라 하남시의원(민주노동당)도 "일부에서 주민소환 투표에까지 이른 하남의 문제를 님비현상 탓이라고 호도하려 하는데, 하남의 문제는 결코 님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홍 시의원은 "시의회에서 반대의견을 냈던 것은 화장장 유치에 대해 명확한 반대의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라며 "예산에 대한 사전 설명 없이 화장장 유치와 관련된 14억 원의 예산을 무조건 심의·통과시켜 달라고 하는데 이런 반민주적인 절차를 어떻게 묵과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주민여론 수렴이 불충분했던 것에 대한 해명도 하남시와 주민소환선거대책위의 입장이 큰 차이를 드러냈다. 하남시에서는 화장장 유치와 김 시장의 새로운 비전에 대한 주민들의 여론을 듣고 반영하기 위해 시장이 직접 동별로 설명회를 개최하려고 했지만, 반대 측에서는 여론 수렴도 시작하기 전에 범대위를 구성하고 주민참여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범시민대책위에서 활동했던 관계자는 "주민의 의견을 듣고 반영하기 위한 설명회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사업을 통보하고 홍보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진행하는 주민설명회여서 전혀 참여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어쨌든 화장장 유치를 디딤돌 삼아 추진하려 했던 김황식 시장의 '하남 비상, 4대 명품 도시비전'은 지역사회의 충분한 공감대를 얻지 못한 채, 단체장 주민소환이라는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 기자의 눈…"갈등 관리, 지속가능한 발전의 초석"
하남시의 지역갈등 사례를 취재하면서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단체장들이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도시비전을 선포하고 추진하는 것은 하남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지금도 적잖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왜, 유독 하남에서만 단체장 소환 투표가 성사 직전까지 갈 수 있었을까. 또 하나 의문은 하남에서와 같이 우리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유사한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하는 것이다.
하남시장이 시의회와 주민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는 비판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는 지역 권력구도(?)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현 시장이 한나라당 시의원 4명에 대한 실질적 공천권을 행사했다는 것이 반대단체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하남시 시의원 총원이 7명에 불과한 것을 고려할 때 현 시장은 행정은 물론 시의회까지 장악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단체장의 독선이 가능한 권력구조를 갖춘 셈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막강한 시장에 대해 주민소환을 추진한 세력의 정체는 또 뭘까. 범시민대책위의 구성을 보면 아파트 주민 중심 조직 이외에 한나라당·열린우리당(당시 정당 이름)·민주당·노동당이 모두 참여하고 있고, 전직 시장과 시의원 등이 포함되어 있다.
현 시장이 지역 내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시민사회 내 반대세력 역시 그에 못지 않은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남은 또 180억 원의 적자를 낸 1999년 세계환경박람회와 관련, 시민들이 소송을 추진한 전례가 있을 만큼 시민의식이 성숙된 지역이다.
조만간 대구·경북에서 하남과 같은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 같다. 시민사회의 대응도 그렇지만 지역 권력구도 역시 '단일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의 관심이 더 높아지고, 권위주의 행정에 대한 혐오감이 커지게 되면 언젠가 시민사회의 '반란'이 우리 지역에서도 벌어질지 모른다. 갈등관리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도 큰 혼란을 미연에 막고,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을 위한 초석을 다지기 위한 것이다.
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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