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당신의 양심은 안녕하십니까?

양심과 염치는 내면의 정직한 이기심과 욕망이 '폭력'으로 표출되지 않도록 스스로 감시하는 기능을 한다.

소설 '초한지'. 한나라 유방과 초나라 항우의 천하를 둘러싼 쟁패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이다. 사면초가에 몰린 항우는 기마병 20여 기만 이끌고 오강에 도착한다. 사방은 온통 한나라 깃발, 한나라 군사의 함성뿐이다. 오강의 정장이 배를 강가에 대고 기다리다가 항우에게 말한다.

"어서 배에 올라 강동으로 가십시오. 강동이 비록 작으나 땅이 사방 천 리요, 백성이 수십만 명에 이르니 족히 왕업을 이룰만한 곳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빨리 건너십시오. 지금 저에게만 배가 있으니 한나라 군사가 이곳으로 온다 해도 강을 건너지는 못 할 것입니다."

항우는 이렇게 답한다.

"하늘이 나를 버리는데 이 강을 건너서 무엇을 하겠는가? 또한 내가 강동을 떠나 서쪽으로 갈 때 강동의 젊은이 8,000명과 함께 하였는데, 이제 내가 그 강동의 자식들을 모두 잃었다. 설사 강동의 부모형제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왕으로 삼아 준다고 한들 내가 무슨 면목(염치)으로 그들을 대하겠는가? 설사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해도 내 양심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항우는 강을 건너기를 거부하고 자결했다. 염치를 지키기 위해 목숨과 천하를 내놓은 것이다.

'초한지'에서 승리자는 유방이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인물은 단언컨대 항우일 것이다. 역사는 승자중심이고 위인전 초한지는 '염치를 아는 패자'보다 '몰염치한 승자'가 되라고 가르친다. 그런 식으로 아이들은 어른이 됐고, 우리는 골목마다 양심과 염치의 반어인 'CCTV'를 설치한다. 양심과 염치가 작동하지 않으니 이른바 'CCTV'라는 '타인의 눈'이 대신 그 역할을 맡은 셈이다. 'CCTV'가 많이 설치된 골목은 그래서 '안전한 골목'임과 동시에 '양심과 염치가 실종된 골목'이기도 하다.

#양심1

◇ 시내버스 양심우산

2007년 초여름 대구 달구벌 버스 202번을 운전하던 서보성 기사는 난감한 상황과 맞닥뜨렸다. 그날 밤 마지막 버스였고,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늦게 귀가하던 여학생이 우물쭈물 운전석으로 다가와 "우산을 빌려달라."고 했다. 서 기사가 집을 나서면서 혹시 비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준비한 우산이었다. 우산을 빌려주자니 자신이 비를 맞아야 하고, 빌려주지 않자니 비 내리는 밤거리에 여학생을 내팽개치는 것 같았다. 그날 서 기사는 비를 맞으며 귀가했다.

이튿날 서 기사는 회사에 제안서를 냈다. "승객이 두고 내린 우산을 모아두었다가 갑자기 비를 만난 승객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하자. 부족한 부분은 회사에서 비용을 부담해 우산을 비치하자."

달구벌 버스는 회의를 열었고 400만원을 들여 운행하는 48대 버스에 10개씩 '양심우산'을 운전석 옆에 비치했다. 이렇게 대구 달구벌 버스는 올해 6월말부터 202번과 202-1번, 성서3번, 북구3번, 518번 시내버스에 승객을 위한 우산을 10개씩을 비치했다. 시내버스의 우산대여 서비스는 전국적으로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회수율은 얼마나 될까. 비 내린 다음날 날씨가 맑으면 29% 회수, 다음 날 비가 내리면 40%에 달하는 회수율을 보인다. 비가 그치면 자기 우산도 잊어버리기 십상인 현대인의 습관을 고려하면 높은 회수율이다. 달구벌 버스 유길의 실장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날은 손실이 적지만 갑자기 비가 내리는 날엔 하루 50만원씩 손실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만한 회수율을 보이는 것을 보면 시민들이 저희의 진의를 잘 이해하시고 협조해주시는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기사들은 "우산을 가져갔다가 고장이 나더라도 돌려주시면 수선해서 쓸 수 있다."며 번거롭더라도 돌려주실 것을 당부했다.

#양심2

◇ 대구 양심 과일가게

지나던 자동차 한 대가 멈추고, 차에서 내린 여자는 5천 원을 진열대 옆 금고에 넣고, 소쿠리에 담긴 감을 준비돼 있는 비닐 봉지에 담아 떠난다. 10분쯤 후 또 다른 자동차가 멈추고 감을 사들고 떠난다. 깎아달라, 더 달라…. 흥정이 따로 없다. 좀 더 담아가고 싶은 사람은 안쪽에 놓인 과일상자 뚜껑을 열고 몇 개 더 담아 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옆 소쿠리, 다른 손님을 위해 준비된 과일에 손을 대는 사람은 없다. 흥정도 계산도 손님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 곳이다.

고모령 고개 아래 팔현마을 동구에 무인 과일가게를 연 사람은 여환욱(55)씨. 그는 이 마을에서 6천 여평 과일농사를 짓는 사람이다. 그가 도로변에 양심과일가게를 연 이유는 '일손이 없어서'이다. 2002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5월엔 버찌를, 6월, 7월엔 복숭아와 자두를, 8월엔 포도, 9월엔 자두, 10월부터 이맘때까지는 단감과 대봉을 내놓는다.

오전 10시쯤 과일전을 펴고, 해가 지면 전을 접는다. 여씨는 농장일을 돌보면서 하루 3,4차례 비어있는 과일 바구니를 채울 뿐이다. 이따금 잔돈이 없는 손님들이 전화를 걸어오면 "그냥 가져가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저 가져가는 손님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여씨는 "저녁에 돈 통에 든 돈과 손님들이 가져간 과일 양을 계산하면 한치의 오차도 없다."고 말한다.

여름철에는 밤 10시, 11시까지 진열해놓기도 했다. 그러나 낮양심과 밤양심은 다르지 않았다. 어둡고 한적한 거리,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계산하지 않고 과일을 가져가는 사람은 없었다.

하루평균 이 무인 양심가게를 찾는 손님은 40∼50명. 손님이 가장 많았던 여름에는 하루 123만원의 매출을 올린 적도 있다. 여씨는 손님들이 이 양심가게를 찾는 이유를 첫 번째 맛으로 꼽았다.

"한 과수원에서 나온 과일이라도 맛이 같지 않습니다. 좀 일찍 된 것, 좀 늦되는 것이 있는데, 가장 적기에 출하합니다. 도매상으로 한꺼번에 내놓는 게 아니라 가장 적절한 수확기에 따낸 것만 내놓습니다. 그래서 손님들은 가장 맛있는 과일을 드시는 셈이지요."

그는 가장 적기를 생각하다보니 '수요'를 따르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가장 맛있는 시점에 출하하니 단골손님들도 많다고 했다.

여씨의 무인가게는 도매가격 정도로 판매한다. 손님들은 가장 맛있는 시점에, 싼 가격으로 과일을 먹을 수 있어 좋고, 주인은 일손을 줄이니 양쪽 모두 이익이다. 상대한 대한 '믿음'이 비용을 아끼고, 맛있는 과일을 맛볼 수 있는 이유였다.

#양심3

◇ 양심 쌀통

대구시 중구 대신동 사무소 입구에는 난전이 펼쳐져 있다. 옷, 양말 등이 진열돼 있고 옆에는 1천원 이상만 내놓으면 됩니다, 라는 글씨와 함께 성금함이 놓여 있다. 정장부터 청바지와 치마까지, 계절별로 겨울옷에서 여름옷까지 물품도 다양하다. 새 옷도 있고 헌옷도 있다. 누구든지 옷 한 벌 내놓고, 자기 몸에 맞는 새 옷을 찾아 입을 수 있다. 내놓을 옷이 없는 사람은 1천원 이상만 내놓으면 그만이다. 지키는 사람도 없고, 얼마를 내라는 사람도 없다. 헌옷은 관내 주민들이 내놓은 것이고, 새 옷은 관내 의류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작은 흠이 있는 옷, 유행이 지난 옷을 내놓은 것이다.

말끔한 정장 한 벌을 집어들고 차마 1천 원을 내놓기 민망해 값을 물으면 "알아서 놓고 가시라."는 답이 돌아올 뿐이다. 누가 와서, 어떤 옷을, 얼마를 두고 가져가는지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게 옷은 돌고 돌고, 모인 성금은 이웃돕기 성금으로 사용된다. 성금 중 일부는 동사무소 문 앞에 놓인 '쌀독'을 채우는 비용으로도 쓰인다. 이 쌀독 역시 누구나 채우고 누구나 퍼갈 수 있다. 누가 채우는지, 누가 퍼 가는지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아무도 살피지 않는데 '사랑'과 '양심'은 스스로 뿌리내리고, 꽃피운다.

대명10동 동사무소 '사랑의 쌀독'도 사정은 비슷하다. 누가 채우는지, 누가 퍼 가는지 모르지만 늘 가득 차고 바닥 드러내기를 거듭한다. 동사무소는 가끔 쌀독이 비는 지 살폈다가 채울 뿐이다. 아무도 적선하지 않고, 누구도 구걸하지 않는다. 다만 양심과 사랑을 나눌 뿐이다.

#양심4

◇양심가게

양심전남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 신촌마을. 74세대 270명이 사는 이 마을은 '무인(無人) 양심가게'로 세상에 알려졌다. '양심껏 내믄 되제 뭐시 어렵당가….' 이심전심으로 '양심가게'를 열었고 그 아름다운 사연은 바람을 타고 세상으로 나아갔다.

마을에 양심가게가 등장한 것은 2005년 5월. 구판장이 운영난으로 문을 닫은 뒤 주민불편이 컸다. 농사에 바쁜 사람들이 생필품 떨어질 때마다 장에 나갈 수도 없었다. 이에 이장 박충렬(47)씨가 매점을 만들고 나무금고와 동전바구니를 놓아뒀다. 일손이 바쁘니 누군가 가게를 지킬 수는 없었지만 문제될 것은 없었다.

"누가 계산 잘못해서 덜 너믄 딴 사람이 계산 잘못해서 더 넣겄재."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이장 박충렬씨는 물건을 사들이고, 진열하고, 물건마다 가격표를 큼직하게 붙이는 일을 맡았다. 가게 한쪽에 외상장부도 마련해두었다. 산골마을이라 집에 현금 없을 때가 잦고, 급할 때는 외상장부에 써놓고 가져가면 그만이다. 외상장부는 '없는 현금을 보충하는 기록물'을 넘어 현대식 '메신저' 역할도 했다.

'몸빼 좀 사 갖고 오시요. 감기약 쪼까 사다주시요. 호빵 좀 구할 수 없을까이. 김 좀 사다 놓으시오.' 저마다 각자의 필요와 자신의 이름을 삐뚤삐뚤, 어법에 맞지 않게 써놓았다. 어법에 맞지 않고, 글씨는 엉망이지만 읽는 이장이 제대로 알아먹으니 충분했다. 산골마을인데다 노인들이 많아 문맹자도 있다. 그들은 '외상장부'에 기록할 줄 몰랐지만 문제되지 않았다. 외상장부의 기록만큼 분명한 '기억장부'에 기록해뒀다가 갚았고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신촌마을의 따뜻한 이야기는 언론을 타고 전국으로 나갔고 여기저기서 격려 전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학여행을 나선 도시학생들이 '믿음' '양심'의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들리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가게에 도둑이 들었다. 가게를 열고 1년 6개월이 지나던 무렵이었다. 금고가 부서지고 자판기가 털렸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손해가 200만원이 넘었고 동네가 발칵 뒤집어 졌다. 마을이장은 60만원을 들여 CCTV를 설치했다. 2006년 11월의 일이다. '미담'을 알리기 위해 찾아오는 언론사의 취재도 모두 거절했다. 1년 6개월 동안 문제없었던 가게에 도둑이 든 것은 가게가 세상에 알려진 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CCTV를 설치하고 이장은 도둑걱정을 덜었다. 그런데 마을 어르신들이 호통을 쳤다.

"CCTV라니 이게 무슨 짓이냐? 400년 넘게 지켜온 우리 마을 인심이 이게 뭐냐? 오죽 먹을 게 없으면 훔쳐갔겠느냐? 훔쳐서라도 먹지 않으면 굶어죽을 사람 짓이 아니겠느냐? 손실이 생기면 내가 소라도 팔아서 보전해주마."

이장 박충렬씨는 동네 어른들이 보는 앞에서 60만원짜리 CCTV를 떼어내고 불태웠다. 다시 달아야 할 때를 생각해 보관해두는 짓은 하지 않았다. 이장은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어르신들의 호통을 듣고 보니 민망하고 죄송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양심과 믿음의 상대어인 'CCTV'는 설치 1주일만에 철거되고 소각됐다. 그리고 이 가게는 다시 '양심가게'가 됐다. 나중에 밝혀진 바지만 도둑은 '철없는 고등학생'들이었다.

그 후 1년이 지났지만 절도사건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절도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큰 기업에서 손실을 보전해주겠다고 제의했지만 거절했다. 이장 박충렬씨는 "무인 양심가게를 도와주려는 사람들로부터 라면 한 봉지 받지 않았다."고 했다.

신촌마을의 '무인가게'는 동네 주민뿐만 아니라 산골마을을 찾아온 외지인들에게 편리한 쉼터가 되고 있다. 손님은 갈수록 늘었고, 간장, 미원, 설탕, 소금 등 생필품 종류는 60여 가지에 달한다. 2,3일마다 한번씩 장을 보고, 물건마다 큼직하게 가격표를 달아놓는 이장의 수고와 '감시의 눈'이 아니라 주민의 믿음이 함께 운영하는 '신뢰의 가게'이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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