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억여행] 김장...예전엔 동네 잔치

찬 바람이 불기 전에 겨울 준비를 해야 한다. 대지가 꽁꽁 얼어붙는 겨울은 누구에게나 힘드는 법이다. 가을걷이가 끝난 농촌은 겨울나기 준비를 위해 분주하기만 하다. 산에서 땔감을 해오거나 오래된 초가를 걷어내고 새 초가를 얹는다거나...그중에서도 절대로 없어서는 안되는 김치. 김장으로 겨울 음식을 준비해놓으면 그제서야 농촌은 긴 겨울잠에 들어간다. 동네 잔치였던 김장잔치를 떠올려보자.

"올개(올해)는 김장을 몇 접을 해야 되나?" "어무이, 큰 집거 까지 같이 하려면 두 접은 있어야 될 깁니더." "작년에 한 접 반 했다가 모질랐제?" 그때의 김장은 요즘처럼 포기 단위로 하지 않았다. 단위가 접이었다. 식구가 많은 집은 한 접으로 배추 100포기가 기본이었다.

그뿐이랴. 총각무 50단에 고추, 마늘, 생강, 미나리, 쪽파, 새우젓, 소금을 일일이 장만을 해야 했다. 그 엄청난 양의 재료를 어찌 혼자서 다 감당할까? 동네 아주머니들이 돌아가면서 김치 품앗이를 하다 보니 그야말로 동네 잔치가 되는 셈이다.

아이들은 김장 품앗이를 하는 제 엄마를 찾아간다. 김장을 담그다 말고 제 엄마가 노란 배춧잎에다 김칫속을 한 입 넣어주면 신이 나서 골목으로 뛰쳐나온다. 오물오물... 매콤한 김치맛보다 아마 제 엄마의 사랑이 더 맛있어서다.

김장 담그는 일 외에도 좀 넉넉한 집은 뜨끈뜨끈한 두부에다 삶은 돼지고기를 내 놓기도 한다. 도회지에서 아들이 큰 공장을 하던 기순네 할매 집은 그야말로 잔칫집이 따로 없다. 다른 시시한 집보다는 기순이네 김장이 더 기다려지는 이유다.

자식들에게 한 입이라도 더 먹이려는 엄마의 눈치는 너무 애틋해 보인다. 마치 새끼제비가 제 어미에게 먹이를 받아먹는 것처럼 아이들은 하루종일 오물오물 먹을거리를 달고 다닌다. 처음 본 생강을 한 입 베어 물고는 찡그린 인상을 펴지 못하던 서너살 꼬맹이도 있다.

김장을 담그는 우물가에서 절대로 멀리 가지 않고 마당 한 켠에서 제기를 차고 고누놀이, 구슬치기를 하다가도 늘 곁눈으로 제 엄마의 손짓을 기다린다. 말뚝박기를 하다가 제 엄마의 손짓만 떨어지면 놀다가도 뛰쳐 나간다. 오물거리며 돌아오는 아이를 쳐다보며 군침을 꼴깍꼴깍 삼켜야 했다.

올해 김장 준비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요즘엔 하우스 재배도 많고 인터넷이나 할인마트에서 수시로 김치를 사서 먹으니 배추 단위가 몇 포기 혹은 몇 키로그램으로 단위 절하가 되었다. 그만큼 김장 개념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전망 2005' 에서 국민 1인당 김치 연간 소비량은 1991년 35.1kg에서 2004년 32.4kg으로 줄었다. 또 배추 김치 역시 1인당 연간 소비량이 1991년 24.7kg에서 2004년 22.2kg으로 줄었다. 무엇보다 서구 식단에 그 원인이 있다.

경북 칠곡군 기산면의 원골마을과 송광매원에서 오는 12월1일부터 김치담그기체험이 열린다. 단순하게 김치만 담그는 행사에서 벗어나 김치의 유래와 역사, 김치 유산균 관찰, 팔도 이색 김치 담그기, 약선 김치담그기 등의 다양한 김치체험이 기다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낙동강 강바람을 타고 나르는 연날리기 체험과 실패탱크만들기, 비눗방울놀이와 같은 전래놀이 도구 만들기 체험도 마련되어 있어 아이들과 동심의 세계로 떠날 수 있다. 체험 문의: 한농교류연합 (053)246-8900)

무엇보다 국산 재료를 사용해서 안전하고 위생적인 김치 담그기를 준비하고 있으며 부재료로 매실을 첨가해 건강 이색 김치를 만들 수 있다. 정체불명의 농산물이라는 의구심은 갖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요즘의 아이들은 김치를 싫어한다. 아이들이 김치를 싫어하면 김치의 원료가 되는 농산물의 재배도, 판매도 줄어들고 급기야 농산물이 필요 없어진다. 너무 극단적인 생각일까?

얼마 전 숙명여대 석사학위논문을 제출한 문선희씨는 김치박물관을 다녀간 600여명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김치선호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김치체험을 한 이후로 김치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가 69.6%였으며 김치를 싫어했는데 좋아하게 되었다가 15.2%로 85%가 김치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김치담그기체험은 우리 미래의 농업을 위해서나 서양일변도의 식생활 개선이라는 건강 문제와 일맥상통한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꼭 필요한 체험 중에 하나가 김치담그기와 같은 우리 전통발효식품체험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옛날 김장잔치처럼 아이들과 함께 뛰노는 그런 잔치가 보고 싶다.

김경호(아이눈체험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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