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여자들의 수다를 두고 부정적으로 일컫는 속담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여자들이 모여 쾌활하게 감성을 나누고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오히려 '힘'이 되고 있습니다. 여성들의 감성으로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언니가 있다. 먼 이국땅에서 홀로 고생하고 있는 동생 생각에 주변의 젊은 미술가들을 어머니처럼 챙기는 언니가 있다. 가난한 미술가들은 '아이들 등록금이 없어도', '팸플릿 인쇄비가 없어도', '술값이 없어도' 그녀에게 전화한다. 그러면 두말하지 않고 돈을 쥐여주는 언니. "여기에 나 같은 미친X이 있으면 내 동생 곁에도 그런 사람 하나쯤 있겠지. 동생이 배고플 때 따뜻한 밥 한 끼, 술 한잔 사줄 사람…."
동생이 있다. 지난 20여 년간, 일본에서, 프랑스에서 갖은 고생 끝에 이국 땅에서 현대미술가로 이름을 날리게 된 동생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파트롱(예술활동 후원자) 언니를 잊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번 팩스로 편지를 주고받았고, 요즘엔 매일 오후 8시 정각, 언니에게 전화해 안부를 묻는다. "언니,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추어탕을 팔아 동생을 뒷바라지해 온 언니 차상남(60) 씨와 언니의 전적인 후원 덕분에 현대미술가로 성공한 차계남(54) 씨는 질투를 살 만한 자매다. 최근 가창에 개관한 갤러리 초청장에는 '차상남 차계남 차우철'이란 이름이 나란히 박혀있다. '언니'가 돈을 내고 '남동생'이 직접 못질을 해 꾸민 갤러리에 '미술가 차 씨'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기 때문. '차 패밀리'의 아름다운 하모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지독한 가난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경북 상주에서 대구로 무작정 떠나온 이들은 식당을 시작했다. 초교 시절부터 식당일을 도운 언니 차 씨는 지금까지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추어탕을 끓여대고 있다.
'식당이 싫어서' 10년쯤 서울에서 무역업을 하기도 했지만 늙으신 어머니의 모습에 다시 식당으로 돌아왔다. '나는 날개를 펴고 못 날았지만 너희는 훨훨 날아가 봐라.' 언니는 동생 둘을 일본에 유학 보내고 20여 년간 뒷바라지했다.
언니는 일본의 동생집을 다녀올 때마다 비행기에서 언제나 한바탕 눈물을 쏟아야 했다. "비가 새서 대야를 이리저리 받쳐놓고, 쥐가 들끓는 방에서 지내는 동생을 보면 너무 가슴 아팠어요. 뒷바라지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기에, 풍족하게 못해준 게 지금도 한이 되어 맺혀 있죠."
언니는 가족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동생의 '작품에 반해서' 지금까지 스폰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프랑스 어딜 가도 현대미술가라면 누구나 아는 동생 덕분에 대리만족을 톡톡히 느낀다고. 동생을 바라보는 눈길에 자부심이 느껴진다.
오전 6시부터 단 한 시간도 허비하며 살아본 적 없다는 언니와 그 언니를 생각하며 오전 5시부터 작업을 시작하는 동생은 늘 함께 가는 평행선 같다. 언니는 동생을 '동반자'라 말한다. "형제들끼리도 존대를 하며 서로 예의를 지켜요. 기차 레일처럼, 너무 접근해도 안 되고 떨어져도 안 되죠."
계남 씨에게 언니는 '산소 같은' 존재다. "눈빛만 봐도 언니는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요. 그 사랑을 기쁜 마음으로 잘 받는 것도 언니를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최세정기자
사진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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