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떠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온갖 사연들이 숨 쉬고 있는 그곳을 수구초심으로 잊지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중략)'라고 정지용 시인도 타국에서의 향수를 사무치게 노래하지 않았던가.
내 어머니는 고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둥지를 틀고 살면서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시골 고향마을을 오매불망 그리워하셨다. 가끔 어머니의 향수병을 달래주려고 함께 그 마을을 찾아가서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아 나올라치면 상기된 표정으로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 옛 일화들을 들려주시곤 했다.
어렸을 적 친구들과 모닥불에 구운 콩을 먹고 난 뒤 온통 검정색 범벅이 된 입을 보며 서로 깔깔거렸던 한때, 청상(靑孀)의 운명에도 흐트러짐 없이 한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았던 올케와의 다정했던 시절, 모심기가 끝난 논두렁에 서서 출렁이는 푸른 물결을 보며 느꼈었다는 벅찬 감동들이 오래된 어머니의 추억 속에서 튀어나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병아리처럼 누비고 다녔던 골목길과 성장기에 겪었던 슬픔을 어루만져 주던 저수지도 세월을 비껴간 듯 그대로인데 사람만 늙었다며 감회에 잠기시던 모습이 쓸쓸하게 전해져 오곤 했었다. 그렇게 매년 드나들었던 어머니의 고향이 언제부터인지 나의 마음에도 깊숙이 들어와, 내가 내딛는 발길에 돌멩이 부딪혀오는 날이면 혼자 그 길을 찾기도 했다.
파도가 철썩이듯 바닥을 가늠할 수 없이 격랑 일던 마음으로 터벅터벅 걸어 다다른 그곳에서 한참을 무념무상으로 머물다가 일렁이는 물결을 잠재우고야 되돌아섰던 적도 여러 번이다. 칭얼대던 아기가 어머니의 심장소리를 들으면 울음을 멈추게 되는 효과처럼 내가 가난한 마음으로 어머니의 고향을 서성이는 것은 바로 그 품안에서 위로를 받고 있는 것 다름 아닌 것이다.
고향이 내포하고 있는 따스함은 역경에 부닥친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극복하고 일어서도록 하는 힘의 원천이 되어 줄 때가 있다. 또한 나이가 들어갈수록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을 그리워하는 일은 더욱 강하게 작용되기 마련이다.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의 맛을 평생 잊지 못하거나 친구들과 뛰어다녔던 동네 어귀를 생생히 기억하기도 한다.
따뜻한 햇볕이 그리운 날이면 내 어머니 팔짱을 끼고 솜양지꽃들 수줍게 마중 나오던 양지마을 그곳으로 가보리라.
윤미전(시인·대구한의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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