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누구를 위한 논술인가

논술이 뜨고 있다. 수능이 끝나자 '논술시장'이 끝없이 달아오르고 있다. '아무개대학교 논술 완성' 따위의 단 하루 이틀, 혹은 일주일 짜리 논술특강이 수험생을 그러모은다. 불안에 지친 부모들은 돈은 둘째 문제고 경쟁에 밀릴 것을 걱정하여 '용한 선생' 혹은 '용한 학원' 찾기에 골몰한다.

강남의 유명짜한 선생에게 듣자면 수백만 원은 기본이다. 학원가에서 알아준다는 어떤 젊은이는 이번 겨울에만 1억여 원 수입을 목표로 뛰고 있다고 한다. 박사과정에 다니는 젊은이에게 과분한 수입이다. 세금조차 없는 고수입이다. 어쩌다 이런 '로또강의'가 판을 휩쓸게 되었는가.

사지선다형 객관식이 아닌 논술시험의 본디 목적부터 되물어본다. 단답형 인간을 양성하는 객관식 시험에 비하여, 논술은 감각적 순발력 이상의 깊은 사고를 요한다. 따라서 논술을 잘하려면 하루아침에 실력이 발휘될 수 없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현 정부는 분명히 내신제를 보장한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2005년 학원가에는 내신전문학원이란 간판이 즐비했다. 불과 3년, 서울의 유명대학부터 내신을 거부하고 나섰다. 89년생들은 교육부의 '모르모토'가 되어 내신에서 다시금 수능으로 내몰렸다. 그 수능조차도 등급제에 걸려들면서 한 문제만 틀려도 등급이 달라져서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리고 아이들 눈 앞에는 다시금 논술이란 마지막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그 복병을 무사히 돌파하기 위해 부모들은 용한 선생을 찾아 돈을 퍼붓는다. 아이의 미래가 달린 대학선택의 기로에서 마지막 '투자'라고 생각하고 퍼붓는 것이다. 내신제를 아랑곳하지 않고 고교 서열을 만들어 줄세우기에만 골몰하는 명문대학들, 그리고 내신제를 보장한다고 공언하다가 슬그머니 내신제 폐지에도 꼬리를 내린 교육관료 사이에서 학생들과 학부모들만 애가 탄다. 금년에 시험보는 비운의 89년생들 입장에서 볼 때, 내신제 무력화는 결국 또 하나의 '국민대사기극' 아닌가.

그렇게 논술시험에 올인 하여 아이들의 창의력이 현격히 높아지고 글솜씨가 늘고 논리적 판단력이 증가되었는가. 오로지 논술이라는 새로운 게임에 몰두할 뿐이다. 한 편의 책을 읽어가면서 인생의 묘미를 터득해나갈 청소년기에 요약본만 읽고 주어진 논술형만 연습할 뿐이다. 학원에서 논술쓰기 전략과 전술만을 배운다. 강사의 논술실력에 관하여 검증된 것도 아직은 없다. 학원식 논술스타일을 대학에서 접수할 이유가 있을까. 여기서도 대학의 책임이 엄중함을 알 수 있다.

대학의 논술 출제방식은 정당한가. 혹은 객관적인가. 학생과 학부모가 '소비자'라면 대학이 제시하는 논술문제에 대하여 품질평가를 할 권한이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문제는 과연 대학의 논술시험 채점의 객관성이 담보되는가에 있다.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조금만 달리 보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답안이 평가자들의 또 다른 시각에 의하여 저평가될 수 있다. 반대로 저평가되어야 할 논술이 고평가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한끝 차이로 허망하게 당락이 갈리는 운명에 놓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로또사회'가 되었다. 분명히 내신제라고 하였는데 내신은 사라지고 수능이 차지하였다. 수능도 등급제로 처리되면서 등급이 문제 하나 때문에 갈리게 되었다.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꿈이라도 잘 꾸든지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내신 무력화에 누가 학교공부에 연연하겠는가. 그나마 버티던 공교육이 2007년 겨울과 더불어 무너져가고 있다.

대통령선거의 쟁점은 오로지 경제일 뿐이다. 입시정책은 뒷자리를 차지할 뿐이다. 우리가 이만큼 먹고살게 된 것도 교육의 힘이다. 열악한 자원을 극복하고 교육의 힘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교육이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오늘의 교육이 엉망이 된다면 내일의 경제를 누가 담보할 것인가.

서민들 생활고와 농촌 및 중소도시민들의 최대 걱정거리의 하나가 교육문제이다. 내신에 수능에 논술까지, 돈 없이는 불가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어느 대권후보의 공약을 보아도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키려는 제대로 된 공약이 없다.

오로지 89년에 태어난 죄로, 고통을 받고 있는 금년의 수험생들은 기성세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가르쳐준 것이라고는 눈치보기와 적당히 훈련하기, 정부발표 불신하기 따위들이다. 정말, 앞날이 걱정된다. 논술시험, 과연 누구를 위한 논술인가.

주강현(한국민속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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