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직사회 '멘토링 제도' 빨간불

신·구 공무원 세대차이로 갈등 되레 갚아져

지난 6월 임용된 신규 공무원의 적응을 돕기 위해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20년차 베테랑 공무원 K씨(43). 그는 멘토가 된 이후 단 한 번도 마음 편히 신규 공무원을 대한 적이 없다. 신규 공무원의 태도가 관료 분위기가 팽배했던 1980년대 임용된 자신과는 전혀 딴판이었던 것.

"상사에게 거침없이 의견을 내세우고 거리낌없이 행동하는 것을 보면 당혹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는 그는 멘토링 제도가 끝나는 다음달 6일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대구 기초자치단체들이 신규 임용 직원들의 공무원 첫 생활을 돕기 위해 너도나도 멘토링 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오히려 신·구간 갈등만 깊어지고 있다. 세대 차이는 물론 각각 임용 당시의 분위기도 크게 달라 신·구 공무원이 서로에게 적응하지 못하기 일쑤인데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무리하게 멘토링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

실제 대구 동구청은 지난 9월, 6개월 계획으로 멘토링 제도를 실시했지만 선임 공무원인 멘토들의 부담으로 결국 두 달 만에 끝을 냈다. 동구청의 한 관계자는 "자신의 업무를 챙겨야 하는 멘토들이 신규 공무원들의 행동까지 돌봐줄 수 없어 결국 2달 만에 제도 시행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선임 공무원들을 지켜보는 신규 공무원들 역시 불만스럽긴 마찬가지. 수도권 소재의 C대학을 나온 K씨(32)는 "나보다 일처리가 늦은 사수를 볼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난다."며 "과거 70년대나 있을 법한 예의를 요구하는 고위공무원까지 있다."며 답답하고 권위적인 사무실 분위기에 불만을 나타냈다.

최근엔 이 같은 공무원 조직의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는 신참까지 생겨나고 있다. 수백 대 일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공무원 사회의 조직 문화와 업무의 획일성을 견디지 못하고 사표를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9급 임용시험에 합격한 J씨(26)는 최근 사표를 내고 출근하던 동사무소에 더 이상 나가지 않는다. 하루 종일 각종 증명서를 발급하는 단순 업무에다 고지식한 선임 공무원을 '모시는 것'이 고통의 연속이었던 것. J씨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직장을 얻기 위해 사표를 쓰게 됐다."고 밝혔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세대간 경험 차이와 함께 소통의 부재를 원인으로 들고 있다. 이희영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업무에 대한 높은 기대 심리를 가진 양질의 고급인력이 관료제가 강하게 남아 있는 조직에 대거 투입되면서 이 같은 갈등 및 마찰이 생기고 있다."며 "양방향적인 소통문화가 일반적으로 퍼져 있는 상황에서 신규 공무원들에게만 무조건적인 지시를 하는 것보다는 민주적인 소통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 방안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멘토링(mentoring)제도=다른 사람을 돕는 좋은 조언자 또는 상담자를 '멘토(mentor)'라 하며 멘토의 활동을 ' 멘토링(Mentoring)'이라고 한다. 최근 사회 초년병이나 신입생들의 조직 적응도를 높이기 위해 널리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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