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윤일현의 교육프리즘] 수능 후유증의 극복

올해 고3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해방 이후 가장 고통스러운 고교 3년을 보냈다. 고1 때는 내신 대란, 고2 때는 논술 광풍, 고3 때는 수능 열풍을 온몸으로 감당해 냈다. 시험이 끝난 지금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더욱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영역별 9등급으로 성적이 표기되는 올해 수능에서는 총점이 높다고 시험을 잘 쳤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총점이 낮은 학생이 오히려 성적이 더 좋은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각 입시기관에서 발표하는 영역별 등급 경계 점수는 수험생과 학부모의 피를 말리고 있다. 등급 간 경계선의 원점수 1점은 그 모든 가능성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수능시험의 후유증은 그 어느 해보다도 심각하다. 시험이 종료되면 모든 구속에서 해방되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수능시험 당일 가채점을 끝낸 순간부터 하루하루가 지옥이라고 말하는 수험생이 많다. 어릴 때부터 수재 소리를 들어 온 한 학생은 "전 영역에서 6점만 틀렸는데 수학 4점짜리 한 문제 때문에 원하는 학과에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14점 틀린 친구는 전 영역 1등급입니다. 너무 억울해요. 미치겠어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학부모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알 수 있다. "장 폴 사르트르가 '지옥이란 타인의 시선'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아이의 수능 성적은 직장 생활에서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조기유학을 보냈더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어느 중견 학자의 독백이다.

"아파트 같은 층에서 마주보고 사는데 한 집은 만족할 만한 점수가 나오고 다른 집은 그렇지 못하다고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피차 얼마나 어색한지 모를 겁니다. 멀리서 어느 한쪽을 보게 되면 눈치 못 채게 기다렸다가 다음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프다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답답하고 아픕니다." 요즈음은 화장도 하지 않는다는 어느 주부의 우울한 독백이다.

단판승부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면 멀리 앞을 내다보고 긴 호흡의 승부를 해야 한다.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한 번 명문대를 졸업했다고 해서 끝까지 기득권이 유지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진정한 공부는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시작된다. 앞으로는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보다는 주어진 업무와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필요한 실력을 갖추고 있느냐 없느냐가 개인적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대학입시는 삶의 한 과정에 불과하다. 입시와 관련된 모든 고통도 미래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다보면 세월과 더불어 치유될 것이다. 온 가족이 서로의 수고를 인정하며 다시 시작하자.

윤일현(교육평론가, 송원교육문화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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