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의 한 초등학교는 올해부터 학생들에게 '휴대폰 소지 허가증'을 발급하고 있다. 허가증 없이 교내에 휴대폰을 가져왔다가는 엄격한 훈계를 받아야 한다. 피치 못할 경우엔 부모님이 이유를 적은 허가 신청서를 제출, 담임교사의 철저한 검토를 받고서야 허가증이 발급받을 수 있다. 허가증이 발급되는 예외 사유는 부모의 맞벌이 등으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방과후 자녀의 이동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경우로 한정했다.
학교가 휴대폰과 한판 전쟁을 치르고 있다. 휴대폰 사용이 초등학생·유치원생부터 중·고교생에 이르기까지 일반화되면서 휴대폰 과다사용으로 각종 부작용이 불거지고 있다. 수업중 휴대폰 사용으로 면학 분위기를 해칠 뿐 아니라, 휴대폰 게임·인터넷 사용으로 인한 과다한 통신비 등이 그것. 대구의 한 고교 교사는 "눈은 칠판에 고정시켜 놓고 책상 아래에서 몰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학생들이 많다."며 "학생들이 웬만한 휴대폰 자판은 기종을 불문하고 다 외우고 있는 것 같다."고 놀라워했다. 최근에는 교내 휴대폰 소지를 제한하거나 아예 금지하는 학교까지 등장하고 있다.
◆학교는 휴대폰과의 전쟁중
지난 23일 오후 대구시 달서구 대곡동 대진고등학교. 한 무리의 학생들이 교내 휴대폰 소지 금지에 동참하자는 피켓을 들고 캠페인에 한창이었다. 학생회장인 김현민 양은 "지난달부터 학생회가 주축이 돼 교내 휴대전화 소지 금지 규정을 학칙에 신설했다."고 말했다. 전교생 390여 명 중 90%가 새 학칙에 동의한 만큼 참여도도 높다는 것.
그러나 지난 3월 신설된 이 학교는 1학기까지만 해도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휴대폰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단단히 겪어야 했다. 면학 분위기를 잡아야 하는 교사와 몰래 휴대폰을 사용하려는 학생 간의 신경전도 극에 달했다. 한 교사는 "수업 시간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교사들도 단속에 지쳐 뻔히 알면서도 놔두곤 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한 남학생은 "오후 9시 야간 자율학습이 끝날 때까지 하루 동안 300통 정도 문자메시지를 보낸 적도 있다."고 했다. 쉬는 시간은 물론 수업 때도 휴대폰을 사용해야 가능한 양이다. 답장 형식으로 문자메시지를 전송하면 상대편 번호를 입력할 필요가 없고 자판도 다 외우고 있기 때문에 일도 아니라고 했다. 이렇다 보니 책상 위에 책을 쌓아놓고 선생님 눈을 피해 휴대폰을 사용하거나 무릎 담요 아래 손을 넣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기발한 방법도 동원된다. 휴대폰 단말기는 자판을 빨리 누를 수 있도록 자판이 좁은 단말기가 더 인기다. 눈을 감고 한쪽 손 엄지만으로도 1분당 3, 4건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무슨 내용을 그렇게 바쁘게 주고받는 걸까. "'지금 뭐 하냐', '수업중이다', '쉬는 시간에 교과서 좀 빌려줘' 아니면 'ㅋㅋㅋ(웃는 모양)'처럼 정말 내용 없는 메시지가 대부분이에요. 문자메시지를 계속 주고받다 보면 꼭 친구와 마주보고 이야기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수업 시간 중에도 휴대폰을 놓을 수가 없어요."
◆휴대폰이 사라진 학교
책은 안 가져와도 휴대폰은 꼭 챙긴다는 아이들. 그러나 휴대폰이 사라지자 가장 먼저 놀란 것은 학생들 자신이었다. 우선 산만하던 수업 분위기가 제대로 잡혔다. 대진고 조은현 양은 "예전에는 수업시간에 벨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맥이 팍 꺾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동수업 때는 주인이 두고 간 가방에서 울리는 벨소리를 찾아 선생님과 아이들이 교실을 샅샅이 뒤진 일도 있었다."며 "그러나 휴대폰이 없어지고부터는 이런 일이 일체 사라졌다."고 말했다. 교실에서 휴대폰이 사라지자 수업 집중도가 높아졌고, 마음 놓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던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도 책에 몰두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성적이 오른 것은 당연했다. 김성수 대진고 교감은 "2학기 모의고사 성적을 학기 초와 비교하면 총점이 30~50점씩 오른 아이들이 많다."며 대견해했다.
염려했던 금단현상도 심각하진 않았다. 나영진 군은 "며칠 동안은 휴대폰이 없는데도 진동벨이 울린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며 "휴대폰 없이는 하루라도 못 살 줄 알았는데 적응해보니까 왜 그렇게 쓸데없이 휴대폰을 끼고 살았을까 의아해진다."고 했다. 김현정 양은 "다른 학교 친구들은 안됐다, 답답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우리는 휴대폰의 구속에서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학생들은 특히 휴대폰을 스스로의 의지로 없앴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김현민 양은 "학교에서 시켜서 한 일이었다면 이렇게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1기 선배로서 후배에게 좋은 전통을 물려줄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 휴대폰중독 10명중 1명꼴
'휴대폰에 빠진 내 아이를 구하라.'
휴대폰은 분명 편리한 이동통신 기기지만 중독에 이르면 문제는 달라진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휴대폰 중독 증상은 휴대폰을 집에 두고 왔을 때 하루 종일 불안하고 초조하거나, 울리지 않은 벨소리를 울린 것처럼 느끼는 환청, 두통 등 다양하다.
특히 자제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은 이런 휴대폰 중독에 더 빠지기 쉽다. 메시지 보내기나 음성통화 이외에도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 MP3기능, 모바일 게임, 인터넷 접속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춘 첨단 휴대폰들은 청소년들의 손에서 쉬 떨어지지 않는다.
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올 초 전국 3천500명의 네티즌을 대상으로 휴대폰 중독에 대한 설문을 실시한 결과, 스스로 '휴대폰 중독상태'라고 응답한 청소년이 10명 중 1명꼴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청소년 상당수가 이미 휴대폰 중독에 깊이 빠져들어 있지만 당사자는 물론 주변에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다. 휴대폰 과다사용은 인터넷 중독현상처럼 우울증이나, 불안, 수면장애, 금단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휴대폰이 없을 때 느끼는 이유 없는 초조함이나 불안감이 그것. 지나친 휴대폰 문자 전송으로 어깨에 통증을 느끼는 '문자메시지 통증(TMI, Text Message Injury)'도 생겨나고 있다. 경직된 자세로 쉴 새 없이 단추를 누르다 보니 혈액순환 장애가 발생해 어깨 통증을 느끼게 되는 단순 반복증후군의 일종이다.
휴대폰 중독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뭘까. 전문가들은 "하루 휴대폰 사용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친구, 가족과 대화를 많이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다음은 학부모에게 권장할 만한 자녀 휴대폰 관리법이다. ▷절제력이 생길 때까지 구입을 최대한 늦춰라 ▷휴대폰 사용 규칙을 함께 만들어라 ▷자녀 명의로 가입하라 ▷공부할 때는 반드시 휴대폰을 끄라 ▷문자 사용량을 통제하라 ▷무선인터넷 서비스는 원천 봉쇄하라.
최병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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