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러햄 링컨,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은 미국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대 대통령이다. 저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 세 사람의 특징은 유머가 넘쳤다는 점이다. 링컨은 라이벌이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 비난하자 가볍게 받아넘겼다. "내가 두 얼굴을 가졌으면 지금 이 얼굴을 가지고 다니겠습니까." 1984년 민주당 먼데일 후보가 재선에 도전한 레이건을 공격했다. "4년을 더 하기엔 너무 늙지 않았습니까." 레이건 73세, 먼데일 56세였다. 측근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바짝 긴장했다. 레이건은 태연했다. "나는 상대 후보가 젊고 경험이 없는 점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TV토론을 시청하던 미국 전역에 폭소가 터졌다. 먼데일은 그 순간 패배를 직감했다고 훗날 술회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닉슨은 43세에 출마한 케네디를 '경험 없는 애송이'로 몰아붙였다. 케네디가 밀리고 있었다. 한 연설에서 케네디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번 주 빅뉴스는 국제문제나 정치문제가 아닙니다. 야구왕 테드 윌리엄스가 나이 때문에 은퇴한다는 소식입니다. 무슨 일이든 경험이 전부가 아니라는 산 증거입니다." 이 한 방의 유머로 전세는 역전이었다.
우리는 어떤가. 1997년 15대 대선 토론회. 이회창 후보가 김대중 후보 나이를 걸고 넘어졌다. "이제는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정계 은퇴를 번복하고 대선 4수에 나선 사실을 비꼰 것이다. 김 후보는 72세, '10년 뒤 제2의 정계 은퇴 번복자' 이 후보는 63세였다. 김 후보가 특유의 쉰 목소리로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 나이도 만만치 않아요." 일순 토론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웃고 즐기면서 대표를 선출하는 축제다. 국민이 정치적 스트레스를 날려보내는 정례 이벤트다. 사생결단으로 물고 뜯는 살벌한 선거는 그 반대이며 오히려 스트레스다. 선거 축제의 성공은 출마자에 달렸다. 출마자의 품격이 중요한 것이다. 서로 격조 높은 입으로 겨루고 상대를 제압할 때 감동의 여운이 더 짙다. 발악적 독설보다 촌철살인의 유머가 파괴력이 큰 것이다.
오늘부터 17대 대선 후보 12명이 표밭을 뛰고 있다. 선관위가 주관하는 3차례 TV토론을 비롯해 앞으로 서로 부딪칠 기회가 많을 것이다. 누가 유머의 위력을 아는 현명한 후보인지 지켜볼 일이다.
김성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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