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시평]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들

우리 인간은 미래를 먹고 산다. '오늘보다 내일이 낫겠지… 올해는 고생해도 내년에는 좋아지겠지….'하는 기대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 가정의 행복과 발전은 말할 필요도 없이 가정을 이끌어가는 부모에 달려있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의 운명이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한 나라의 행복과 발전은 정치 지도자와 대통령에 달려 있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 때가 되면 온 국민은 정치에 마음이 쏠린다. 지난날 대구 수성천변을 꽉 메운 선거유세가 그렇고, 서울의 한강백사장을 구름같이 뒤덮었던 대통령선거 유세도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장꾼보다 풍각쟁이들만 들끓고 있다. TV 토론도 별로 흥미있어 보이지 않는다. 냉혹하리만큼 민심이 달라졌다.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옛날 같지 않다는 증거다. '누가 되어도 마찬가지'라는 실망의 눈빛이 완연하다.

독립운동가도 해보고, 군인도 해보고, 민주투사도 해보고, 보수파도 해보고, 진보파도 해보고, 운동권도 해보고, 늙은 사람도 해보고, 젊은 사람도 해봤지만,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는 늘 먼 거리에 있었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평균 80%가 넘는 기대를 가졌지만 임기 말에는 30%를 넘지 않았다. 그만큼 국민의 희망에 비해 실망이 크다는 증거이다. 실정과 부패로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해 있다. 그 때문에 3척동자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에 존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이 나라의 장래가 걸려있는 중차대한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두고 정강정책은 뒷전에 밀리고, '저놈이 죽어야 내가 사는' 물고 뜯는 아비규환만 남아있다. 도덕성이 모자라는 후보자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대통령으로 뽑아야하는 국민의 상실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헌정 60년 사상 123개의 정당이 명멸했다. 지금도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야당은 정권을 빼앗기 위해서, 여당은 정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무엇 때문일까. 먹이사슬 때문이다. 집권하고 나면 자기들 패거리는 좋은 자리 다 차지하고 잘먹고 잘산다. 도탄에 빠진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고위직과 재벌들은 재산이 점점 늘어나는데, 서민들의 가계는 자꾸만 쪼그라들고 있다.

젊은이들은 직장을 포기하고, 실직자는 거리를 방황하고, 건물들은 세가 나가지 않아 텅텅 비어있고, 장사가 안된다고 야단들이다. 직장인들도 언제 밀려날지 불안하다. 자살 증가율이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위정자들은 흥청망청이다.

나라 빚이 282조 8천억 원이다. 가구당 빚이 3천730만 원이다. 국민 1인당 빚이 300만 원이다. OECD국가 중 세금 증가율 1위이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마저 각종 행사로 흥청거린다. 생산성은 하나도 없고, 빚을 내어 벌이는 전시성 행사는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

무보수 명예직으로 출발한 풀뿌리 지방의회가 유급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급료 올리기 경쟁을 하고 있다. 땀흘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바보 취급을 받고,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은 무능한 사람 취급 받은 지 오래다. 상납을 해야 사업을 할 수 있고, 계급이 올라간다. 올라간 사람은 본전 생각에 부패하고, 어쩌다 걸려들면 '나만 재수 없이 걸렸다.'고 한탄한다. 명절 때 선물(뇌물) 하나 못 받으면 마누라도 무능한 남편 취급한다. 총체적인 난국이다. 뉴스 보기가 두렵다.

BBK X파일 논란, 삼성 비자금 특검 논란, 청문회 떡값 설전… 현직 국세청장이 뇌물수수로 구속되었다. 변양균 신정아 사건은 권력형 비리다. 거액의 쌍용 비자금이 불거졌다. 전직 대통령 형제가 재산싸움을 했다. 명문대 총장 부인이 편입학 부정으로 2억을 먹었다. 공공기관 연봉잔치, 공무원 공짜 외유, 4대 연금 2050년 178조 적자….

그뿐인가, 보훈처 차장이 가짜 유공자가 되고,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뇌물수수로 구속됐다. 삼성이 청와대 비서관에게도 뇌물을 건넸고, 설상가상으로 외고 입시부정까지 터졌다. 이것이 최근 한 달간 대서특필된 뉴스다. 몰표를 몰아주어도 대구·경북은 꼴찌 신세를 면치 못한다. 희망을 잃은 국민, 도덕이 무너진 사회… 정말 살맛 안 나는 세상이다.

부도덕하고 失政(실정)한 자를 대통령으로 뽑아야하는 우리 스스로가 참담하다. 국민은 간 곳 없고, 대한민국 대통령 당선 여부가 '김경준'이라는 한 사람에 달려있는 듯하다. 날씨는 자꾸만 추워지고 있고, 기름값이 걱정이다. 웃어야 오래 산다는데, 왜 이렇게 우울해지는지 모르겠다.

송일호 전 대구소설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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