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돈 중독

작년 말, UN개발경제연구소가 부의 분포를 분석해 발표했다. 4억 7천만 원(50만 달러) 정도 있으면 세계 최상위 1%에 들고, 5천700만 원이면 10% 안에 속하며, 210만 원만 있어도 세계 부자 서열 상위 50%에 든다는 게 요지였다. 가난한 서민들에게 위안을 주며, 앞만 보고 달리던 사람들에겐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충격이었다.

올 봄,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그 '최상위 1%' 사람들에게조차 가장 큰 걱정거리는 역시 돈 문제더라는 게 핵심이었다. 지난여름, 뉴욕타임스 신문은 심지어 백만장자까지도 그런 삶에서 예외가 아니더라는 기사를 실었다. 재산이 100억 원이나 되는데도 가난한 서민처럼 앞날을 불안해하고, 그 탓에 노동자보다 더 많은 주당 70여 시간씩 일에 매달리는 경우가 적잖더라는 얘기였다.

그 즈음, 파이낸셜 타임스 신문은 중국에서 '린위안(林園)'이라는 새로운 영웅이 탄생했다고 보도했다. 대학 재학 중 100만 원 정도로 주식투자를 시작, 18년 만에 1천200억 원 이상으로 불린 올해 44세 된 인물. 그는 '중국의 워런 버핏'이라고 불리며, 종전까지 영웅으로 떠받들려 오던 '레이펑(雷鋒)'을 밀어냈다고 했다. 레이는 자신의 고난을 감수하며 남을 위해 희생적 삶을 살다가 45년 전 요절한 병사였다.

우리나라 사정 또한 그 비슷하게 바뀐 것으로 확인됐다는 라이프스타일 조사 결과가 최근 보도됐다. IMF사태 이후 정치'민족 등 대의에 관한 관심은 줄고 주식'부동산 같은 개인 재산 문제에는 관심이 늘었다는 게 내용이다. 학문'문화가 무슨 소용이랴, 돈만이 최고이니 너도나도 장사나 하러 나서자던 1990년대 중국 문화계의 '샤하이(下海)' 풍조를 연상시켰다.

대통령 선거가 걱정스럽다. 어떤 비전도 관심 밖으로 밀려나간 채 실현 가능성도 불투명한 경제 살리기 공약만 춤추는 듯하다. 모두가 돈에 매몰돼 있음을 선거꾼들이 눈치챈 결과일 터이다. 이러다 정말 철학과 생각이 사라진 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오늘 어느 신문에 실린 일본 도쿄대 교수의 지적(이하 요약)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과거엔 경제가 도덕과 하나였지만 지금의 경제 능력은 돈의 흐름이나 잘 조작하는 기술로 전락했다. 대선 평가 기준으로 경제 발전에 집착하는 것은 비극이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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