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겨울 팔공산

갑자기 날씨가 영하로 떨어졌다. 대구의 날씨는 가을다운 정감을 별반 느끼지 못한 채 여름에서 겨울로 접어든다. 겨울은 공연히 마음이 쫓기는 계절이다. 잎도 꽃도 열매도 다 떨치고 앙상하게 서 있는 외로운 나무처럼 무미건조하게 시간을 보낼 듯한 계절이 또한 겨울인가.

나는 가끔 시간을 내어 팔공산의 정취를 감상하러 가곤 한다. 신천동로를 따라 무태로 가면 수달과 피라미들도 뛰놀고 있는 호수 같은 신천의 맑은 물과 무태천에 한가로이 날고 있는 기러기와 청둥오리 떼가 겨울 정감을 더해준다.

지난 주 일요일에 동화사에 갔다. 겨울이라 그런지 사람이 드물어 절간 특유의 고요함을 지니고 있었다. 봉서루 누대를 지나면 대웅전, 삼존불이 천년의 미소를 머금고 삼매에 잠겨있고, 단청 고운 천장에는 용과 봉황이 상서롭게 날고 있다.

동화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을 지휘하던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해서 더욱 정감이 가는 사찰이다. 동화사로 오르는 길옆에는 단풍이 든 나무와 푸른 소나무가 어울리고 그 밑으로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무념무상의 세계에 젖어들게 한다.

이따금 배낭을 메고 정담을 나누며 오고가는 등산객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졌다. 이 겨울에 오동나무 꽃이 예처럼 피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며 부인사로 향했다. 부인사는 신라 때 창건한 사찰이다. 초조 장경의 판각 장소라 하지만 지금은 그 화려했던 자취들이 세월에 묻혀 무상함을 전한다.

저녁 무렵 큰 길에서 조금 올라 '팔공산파계사'란 일주문을 들어서니 소나무와 잡목이 풍상을 겪으며 비틀어지고 휘어진 채 각양각색으로 늘어서 있고, 개울에는 낙엽이 지천으로 쌓여 겨울의 흥취를 더한다. 진동루 앞 양편에 전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고 진동루를 비껴 들어가니 원통전 양쪽에 적묵당·설선당, 뒤로는 기영각· 산령각이 자리하고 있다.

산사를 비호하듯 저 멀리 높은 산등 위에는 구름이 무심히 날고 주지 스님이 거처하는 사저에는 벌써 목련이 하얗게 꽃봉오리를 맺을 준비를 하는 듯싶다. 가냘픈 풀벌레소리와 산새소리가 저녁 파계사의 적막을 깨치고 은은한 달빛이 가로등 불빛이 젖은 나그네의 온몸을 비추면 찌들었던 가슴 한편이 휑하게 맑아진다.

한티 재에서 7km 정도 가면 제2석굴암이다. 석굴암으로 가는 내리막길 양쪽에는 빛바랜 느티나무 잎이 가는 시간이 아쉬웠던지 끝가지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린다. 제2석굴암은 자연이 그대로 예술로 승화된 듯 순박한 부처이다. 이렇게 팔공산의 겨울 순환도로와 주변 경치는 삶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주는 위안의 길인 것이다.

장식환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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