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경기 시화MTV(멀티 테크노 밸리) 개발사업이 시작됐다. 2001년 개발계획이 고시된 이후 6년 만이다. 당초 1천46만여㎡(317만 평)였던 개발규모는 환경단체들의 의견과 환경영향평가 결과 등을 반영해 924만㎡(280만 평)로 축소됐다.
녹지비율도 당초 20.3%에서 27.5%로 확대, 환경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개발을 도모했다. 개발이익은 시화지역 환경개선과 지역발전을 위해 전액 재투자하도록 하는 방안도 합의내용에 포함됐다. 시화호 개발과 관련, 그동안 수질오염과 대기·악취 문제 등 환경논란으로 정부와 시민사회단체들이 끊임없는 대립과 투쟁이 벌인 사실을 기억한다면 다소 뜻밖의 진전이다.
지금의 거대한 시화호는 1985년 수도권 내 신규 공업용지 확보를 위해 방조제 공사를 시작, 1993년과 1994년에 1, 2호 방조제가 완료됨에 따라 생겨났다.
그런데 시화호의 오염과 생태환경의 급격한 변화라는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닥쳤다. 1994년 안산 YMCA 토론회를 계기로 불붙은 시화호 관련 시민운동은 1999년 3월 '희망의 시화호 만들기 화성·시흥·안산 시민연대'를 발족시키면서 조직적 연대운동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때부터 시화호와 그 주변 지역은 우리나라의 환경 오염과 파괴를 상징하는 대표적 지역으로 부각됐다.
"지금도 시화지역의 한 해 전출입 인구는 4만 명으로 전국 최고 수준입니다. 수도권에서 밀려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시화로 흘러들어왔다가, 기회만 닿으면 떠나는 것입니다."
서정철 시흥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은 "시화호의 오염에다, 염색공장이 밀집한 시화·반월공단의 악취와 대기오염은 그야말로 환경 대재앙을 초래했다."며 "이 때문에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어떤 개발에 대해서도 지역사회가 강하게 반발한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3년 12월 12일 시화호 남측 간석지를 관광·레저 및 연구, 주거기능을 갖춘 신도시로 개발하겠다는 시화지구 장기종합계획(안)이 발표되자, 시민단체와 언론은 '시화호를 두 번 죽이는 개발안'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정부·수자원공사(사업주체)와 시민사회의 대립·갈등은 갈수록 고조됐고, 사업추진은 답보를 면치 못했다.
갈등해소의 실마리는 2004년 1월 시화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출범하면서 가닥이 잡혔다. 정부 측에서는 시민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더 이상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있었다. 또 시민사회에서도 시화호 방조제 완공 후 10년간의 끈질긴 저항과 투쟁에도 불구, 썩은 물과 오염된 공기로 인한 시흥·안산 지역 주민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현실론이 대두된 것이다.
서정철 상임의장은 "극한 갈등과 대립의 주체들이 한자리에 앉는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며 "협의회 구성은 정부 측이 ▷개발 반대자 위원 포함 ▷지금까지의 행정절차를 무시하고 처음부터 다시 논의 ▷만장일치 합의 채택 ▷논의된 것은 바로 집행한다 라는 전제조건을 파격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3년 6개월에 걸쳐 400여 회(공식회의만 140여 회)의 회의를 가지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이해관계에 따라 지자체가 협의회를 탈퇴했다가 다시 가입했고, 몇몇 환경단체들은 끝까지 개발을 반대하며 협의회 참여를 거부했다.
정부 내에서도 지루한 논의에 염증을 느끼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하지만 협의회 참가자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인내심을 갖고 현실적 대안을 모색했고, 대기개선 로드맵(예산 7천억 원)과 수질개선 로드맵(예산 920억 원), 4간선수로 수질개선(COD 2004년 1,970ppm → 2005년 10월 20ppm 이하) 등의 가시적 성과들을 이뤄냈다.
"정부와 시민단체의 입장이 너무 달라 인식의 차이가 컸지만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진정성'을 느낀 것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각종 비용은 수자원공사에서 부담했지만, 연구용역기관 선정이나 과업지시서 작성, 자문그룹 활용 등은 개발에 부정적이었던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맡았습니다. 시민사회단체가 정부주도의 용역결과를 믿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병준 시화호 시민연대회의 사무국장은 "주민설명회와 여론조사를 통해 주민의사를 확인한 뒤 최종 합의를 이루는 등 최선을 다했다."며 "그러나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끝까지 개발에 반대만 하는 일부 시민단체의 협의회 탈퇴와 비난은 끝까지 피할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 인터뷰-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은 "법원판결이나 주민투표 등을 통해서만 갈등을 해결하려고 하면, 방폐장 유치와 관련해 부안군민의 35%가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지역공동체를 파괴하고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정치권력이 정책을 결정하면 국민이 그대로 따랐지만,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정책결정에 (주로 서울에 있는) 시민사회단체가 관여하게 됐고, 참여정부 이후에는 중앙정부와 중앙시민단체 이외에 지자체, 지역단체, 찬·반 지역주민 등 다양한 집단이 의견을 표출하는 다강구조를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소장은 "갈등해결에 가장 큰 걸림돌은 아직도 많은 관료들이 개발경제시대의 경험과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과거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과, 대립과 투쟁이 습관화된 시민사회단체에 의한 논의 구조의 독점"이라고 말했다. 우리 시민사회단체의 이런 속성은 합의와 협력을 야합과 타협이라며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선진적인 문제해결의 사례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박 소장은 "다원화된 사회에 맞는 갈등 인식과 해결 방식이 필요한 만큼 다원화된 사회구조에 맞는 논의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정책 결정과 집행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참여는 필수적이고,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뿐만 아니라 영향을 받는 사람들까지 참여에 포함시켜야 하며, 정부 역시 우월적인 위치가 아니라 이해관계자의 하나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석민기자
♠ 기자의 눈
중앙정부와 수자원공사·지자체·시민사회단체 등이 협의체를 만들어 오랜 대립과 갈등을 끝내고 합의를 이끌어 낸 시화지역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례는 인상적이다. 3년 6개월이란 긴 기간(?)도 그렇고, 400여 회에 이른 회의 횟수도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더군다나 서울의 시민단체를 배제하고, 지역 시민사회단체를 협의회에 참가하도록 한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서울의 시민단체를 참여시킬 경우 '환경원리주의'와 같은 추상적이고 가치지향적인 접근방식으로 인해 협의나 대안의 모색이 힘들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지역 시민사회단체야말로 지역 현실에 밝고, 지역민들에 실질적으로 이익이 되는 합의안을 도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같은 시화지역의 사례가 우리 대구·경북 지역에 많은 교훈을 줄 수는 있을지언정 일반화되기에는 여러 가지 제한점이 있다. 시화호 조성에 따른 엄청난 규모의 간석지 개발은 정부로서는 반드시 추진해야 할 국가적 과제일 뿐 아니라, 개발이익도 막대하다. 정부나 사업주체 입장에서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서라도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우리 지역의 사정은 다르다. 각종 개발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의지와 노력 이외에 중앙정부의 지원과 민간자본(기업 등)의 참여가 있어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역사회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붓는 소모적인 논란이 지속될 경우, 중앙정부와 민간자본은 다른 지역으로 발길을 돌려버릴 것이 뻔하다. 비록 지역 내 갈등을 해결해 가는 방식은 바뀌었지만, 효과적인 지역개발의 필요성이 여전히 높은 우리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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