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불과 20일 앞으로 다가왔다. 요란하게 테마 송을 흘리는 유세 차량이 거리를 내달리고 별 차별성도 없어 보이는 공약들이 확성기를 타고 귓전을 때리고 있다. 사상 최다 후보 난립으로 가뜩이나 어지러운 대선판에 굵직한 비리 의혹까지 터져 나왔다. 일각에서는 '대선 뇌관'이라 부르며 그 후폭풍이 어떻게 표로 치환될 것인가 계산하느라 바쁜 모양이다.
신정아 사건으로 시작된 각종 의혹들이 BBK 공방과 삼성 비리 의혹 폭로로 이어지면서 온 나라가 불 난 호떡집 같다. '부패방지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부패의 망령이 우리 사회에 회오리처럼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해외 언론들은 독일 지멘스 사건이나 미국 엔론 사건까지 들먹이며 한국 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법이 현실을 완전히 제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온갖 난관을 헤치고 법과 규칙을 만들고 정의를 세웠다고 자부해왔다. 그것이 2001년 7월이다. 하지만 2007년 11월 지금 우리는 부패의 짙고 두터운 그림자에 다시 갇힌 꼴이다.
부패(corruption)라는 말에서 사람들은 제일 먼저 무엇을 떠올릴까. 마니 폴리테(Mani pulite)와 廉政公署(염정공서)와 같은 용어가 연상된다면 부패에 대해 꽤 관심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다. '깨끗한 손'을 뜻하는 마니 폴리테는 지난 1992년 안토니오 피에트로 검사를 위시한 이태리 사법 당국이 정치인과 기업인들 사이에 얽히고 설킨 부패 구조를 수사하면서 벌인 반부패 캠페인이었다. 당시 사건이 터진 밀라노는 탄젠토폴리(Tangentopoli) 즉 뇌물도시라 불렸고 집권 사회당의 크락시 총리 등 많은 정치인'기업인들이 자살하거나 실각한 부패 스캔들이었다. 염정공서는 홍콩의 반부패 정책의 상징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적인 반부패 정책을 추진해온 홍콩의 염정공서(HK Independent Commission Against Corruption)'는 '同創廉潔社會(우리 함께 깨끗한 사회를)'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부패 척결에 앞장서고 있다. 같은 성격의 기구인 국가청렴위원회와 영문 명칭도 같다. 말하자면 원조격이다.
역사의 시계를 더 멀리 되돌리면 부패라는 키워드와 연관된 인물이 등장한다. 17세기 영국의 사상가 프란시스 베이컨이다. 그는 엘리자베스 1세 치하에서 의원과 검찰총장, 대법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그의 권세도 수뢰 사건으로 파탄에 이르고 말았다. 부패 혐의로 탄핵을 받아 관직과 지위를 박탈당하고 실각한 것이다. 이 어두운 역사에서 그래도 영국은 교훈을 얻었다.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절 세계 최초의 부패방지법을 만든 것이다. 부패를 고민하는 사회만이 얻을 수 있는 산물이 아닐까.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우리는 시스템으로 운용되는 투명한 사회를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러나 이제 정권이 문을 닫으려 하는 이 시점에 신정아 사건과 BBK 사건, 삼성 특검법, 대통령 당선축하금 등 잇따른 추문은 우리를 절망케 한다. 사회지도층 가운데 청렴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10명 중 3명도 되지 않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우리를 암울하게 만든다.
블룸버그의 보도대로 부패와 불투명성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촉발시킬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투명하지 못한 기업과 더 가지려 온갖 불탈법을 저지르는 가진 자들 때문에 힘들게 일궈놓은 국가와 사회가 헐값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세계 10위권 경제라고 우쭐대던 대한민국이 부패의 사슬에 발목 잡혀 제 값을 못한다고 생각해보라. 분통 터질 일이다.
대다수 선량한 국민들이 미리 점수 깎이고, 밑지고 들어가야 하는 나라에서 살고 싶어할까. '깃털도 쌓으면 배를 가라앉힐 수 있다'는 고사가 있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쌓인 부패의 먼지가 언제 한국을 거덜낼 지 모를 일이다. 켜켜이 쌓인 부패의 먼지를 빨리 털어내지 못한다면 부패라는 유里(유리)의 감옥은 더욱 우리 목을 옥죌 것이다. '깨끗한 손' 전통을 후손에 물려주는 것도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의 책무가 아닐까.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