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대구지법 21호 법정. 대구지법 형사 3단독 한재봉 판사가 판결문을 읽어내려갔다.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
순간, 70을 훌쩍 넘긴 피고인 김모(72·여) 씨는 고개를 떨궜다. 이어 한 판사는 판결이유를 밝혔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거늘 장애아들을 둔 운명 때문에 평생을 죄인 아닌 죄인으로서 남몰래 눈물을 삼키며 살아왔고 비록 스스로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피고인 역시 아들의 죽음으로 누구보다도 가장 큰 슬픔과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또 다른 피해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률적으로 피고인을 가해자로 망인을 피해자로 구분 지어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지만 50년간 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 헌신해 왔고, 아들의 잘못된 행동을 꾸짖다가 이 사건이 발생했으며 망인의 처가 관대한 처벌을 탄원하고 있는 점을 고려,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판시했다.
또 한 판사는 이례적으로 시인 천상병의 '귀천'을 인용해 "피고인이 칠십 평생을 사회적 비난을 받을 만한 어떠한 잘못을 저지르지 아니하고 성실하게 살아 왔음에도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하늘로 돌아가는 날'까지 이 사건으로 치유할 수 없는 정신적 상처를 남겼고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고 덧붙였다.
왜소증을 앓고 있는 50대 아들을 자신의 숙명으로 알고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해왔던 김 씨는 지난 3월 아들이 자동차 두 대를 할부로 구입한 후 이를 처분한 돈을 유흥비로 탕진한 것을 알게 됐다. 몇 년 전 아들의 무분별한 낭비 탓에 발생한 채무 2억 원을 갚아주고 전셋집과 구두수선점까지 차려준 터라 '더 이상 아들의 낭비벽을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곧바로 아들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았다.
평소와 달리 김 씨는 흉기까지 들고 엄하게 다그쳤고, 그 과정에서 소파에 앉아 있던 아들이 갑자기 일어서다 넘어지면서 흉기에 찔렸다. 결국 김 씨는 지난 7월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정상을 참작, 불구속 기소하고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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