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의 오늘-언론인 장지연 출생

일제강점기의 언론인이며 우국지사인 위암 장지연이 1864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조선시대 예학의 대가인 장현광의 12대 후손으로 태어나 어려서 장석봉에게 유학을 배웠다. 1894년 進士(진사)가 되었고, 이듬해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의병의 궐기를 호소하는 격문을 각처에 보내기도 했다.

1898년 '황성신문' 창간에 참여하고 1899년 '시사총보'의 주필로 계몽적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또 광문사를 설립해 정약용의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을 발간했고 1901년 황성신문사 사장이 되어 민중계몽운동과 자립정신 고취에 전력을 다했다. 특히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사설 '시일야방성대곡'을 써 을사조약을 통렬하게 비판하여 민족의 독립정신을 촉발했다. 이 사설로 인해 '황성신문'은 압수 및 정간처분을 받았고 위암은 일본 헌병대에 잡혀 4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1906년 윤효정 등과 대한자강회를 조직, 본격적인 구국운동을 벌였지만 이듬해 강제해산되었다. 1908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해조신문' 주필로 활동하다가 경영난으로 신문이 폐간되자 귀국했다가 1920년 자택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1963년 제1회 청룡영화상 시상 ▶1964년 '수출의 날'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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