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을 땄다는 연락을 받으니 지난 세월이 주마등 같이 스쳐 지나가더군요. 병마와 싸워 이겨준 딸아이와 장애를 가진 남편을 끝까지 보살펴 준 가족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전세계 37개국, 425명의 장애인이 참가한 '제 7회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 전세계에 '양복' 명장임을 입증한 황기철(52) 씨. 대구 남구 봉덕동에서 작은 양복점을 운영하는 황 씨는 어린 시절 갑작스레 찾아온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절게 된 후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각오로 양복 만들기에 뛰어들었고 이번에 세계 최고가 된 것. 그는 채 33㎡도 되지 않는 작은 점포에서 36년 세월을 양복과 함께 했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가위질로 그는 지금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양복을 기술 이상의 작품으로 여긴 것은 아니었다. "양복만 잘 만들면 대회에서 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양복을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보더군요."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양복이 아닌 작품을 만들게 됐다고 털어놨다. 양복을 만드는 손짓과 가위질 등 명장의 기품까지 평가한 대회 덕분에 세계 최고 명장이 될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양복에 기품을 넣어 작품을 만드는 명장이 되는 과정은 그에게는 특히나 멀고 험난했다. 그는 기능 올림픽을 석 달 앞두고 진행된 장애인 촉진공단의 합숙훈련을 받을 수 없었다. 미용일을 하던 첫째 딸(24)이 파열성 뇌동맥류로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병원에서는 살 수 있는 확률이 20%라면서 수술을 해도 평생 장애가 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땐 대회고 뭐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어요. 딸아이가 죽게 생겼는데 뭔들 손에 잡히겠어요." 그러나 한 달 뒤 기적이 일어났다. 살 수 없다던 딸아이가 수술 후 기적같이 다시 눈을 뜬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내 한애화(47) 씨에게 딸을 맡기고 곧바로 대회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두 달의 합숙과정을 거친 뒤 지난 18일 일본에서 열린 장애인 기능대회 금메달을 따면서 세계 제일의 양복 명장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금메달을 딴 뒤 첫째 딸에게 가장 먼저 보여줬다는 그는 그간의 시련이 오히려 자신과 가족을 강인하게 만들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저의 장애와 딸아이의 병마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가족의 노력과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혹 어려움에 처한 분들이 있다면 저와 저의 가족 이야기가 희망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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