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SOS" 119의 절규] 일선 소방서 현장 직접 보니…

부족한 인력·열악한 근로조건

소방서는 열악하다. 소방관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장난전화일까? 기자가 만난 한 소방관은 장난전화보다 더 싫은 게 자식들에게 아버지의 일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주 40시간(5일) 근무가 보편화되고 있지만 '24시간 격일제 교대 근무'로 주 84시간을 근무하고 있는 지역 소방관들의 열악한 일터를 찾아가봤다.

◆2교대 근무, 불나면 혼자 출동

"애앵, 애앵~ 화재출동."

청송군 부남면 부남지역대에 안동소방서로부터 화재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사무실을 방문한 기자와 함께 느긋하게 커피 한잔 할 여유도 없이 김명수 소방교는 아래층에 대기된 소방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고 막 출발하려는 순간 '장난전화'라는 무전이 날아들었다.

김 소방교는 다행이라는 듯 깊은숨을 몰아쉬며 기자에게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한 명만이라도 더 충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화재 진압하러 가는데 혼자 출동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소방차 몰아야지, 현장에 도착해 방수복 입고 공기호흡기 착용해야지, 호스 깔아야지, 소방차 방수시설 조작해야지….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이러다 늦어 제때 불 못 꺼봐요, 모든 책임은 혼자 덮어써야 하지요."

현행 규정에는 소방차 한 대에 최소 3명이 타도록 돼 있다. 하지만 소방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혼자 출동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했다. 그는 "지역대 대부분이 정원이 두 명인데, 24시간 맞교대로 일을 하니까 혼자 출동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불날 일이 잘 없는 농촌 지역에 무슨 소방인력이 더 필요하냐고 묻곤 하는데 지금 현실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농촌지역의 밤을 지키는 곳은 소방서뿐이에요. 면사무소, 보건지소 등 모든 관공서가 문을 닫아요. 밤에 지역에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119'입니다. 앞으로 고령화사회가 더 심화될수록 '119'를 찾는 사람은 늘 수밖에 없어요." 김 소방교는 "주민생활과 밀접한 보건복지 기능 강화를 위해서라도 소방인력 확충은 절실하다."고 했다.

◆화장실이라도 있었으면…

안동소방서 현동지역대에 근무하는 노상태 소방장은 매일 긴장 속에서 산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재의 위험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절박한 것이 있다. 그에게 해만 떨어지면 찾아온다는 무서움이라는 것이 뭘까? 노 소방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화장실 문제라고 털어놨다. 면사무소 2층에 세든 지역대 사무실에는 화장실이 없기 때문이다. 면사무소 문이 열려 있는 오후 9시까지는 면사무소 화장실을 쓰면 되지만 문을 닫은 이후가 문제인 것.

"예전에는 면사무소도 당직 근무를 섰지만 몇 년 전부터 오후 9시만 되면 당직자가 무인 경비시스템을 가동하고 재택근무하러 귀가합니다. 그래서 밤에 용변이 급해지면 난감하지요. 인근 식당이나 가게를 뛰어다니며 화장실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노 소방장이 터득한 문제 해결 방법은 오직 저녁식사를 적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새벽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집에 뛰어가 화장실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대해 자괴감마저 들더군요."

◆바람이라도 막았으면

지난 22일 찾은 청송군 현동면 현동지역대 사무실은 이곳이 소방서 사무실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면사무소 2층 귀퉁이에 세워진 슬레이트 가건물은 초겨울 바람에 삐걱거리고. 5평 남짓한 사무실의 벽지와 장판은 곰팡이가 슬어 너덜너덜했다.

"사무실 집기도 면사무소와 인근 다른 관공서에서 쓰다 버린 것들을 주워다 쓰고 있어요." 그는 "부끄러우니까 더 이상 묻지 말아달라."며 기자에게 손사래를 쳤다.

"15년 동안 소방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아직 한 번도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일하는 곳을 보여주지 않았지요."

그를 뒤로하고 나오면서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인 이웃 면사무소가 눈에 들어왔다. 청송군 한 관계자는 "노후화된 역내 면사무소 2곳에 모두 1억 6천만 원의 예산을 들여 '사무실 환경개선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안동·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청송·김경돈기자 kdon@msnet.co.kr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영주·마경대기자 kdm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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